이날은 제가 EGOZINE의 에디터가 아닌 스타일링 팀 SSAW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출범한 날입니다. 패션 캠페인, ‘아트 인 라이프(Art in Life)’ 촬영 때문에요. 우리가 입는 ‘옷이 삶과 가장 밀접한 예술작품’이 아닐까라는 발상에서 시작되어, 디자이너가 예술가 라면 그들이 제작 옷 또한 예술가의 EGO가 담긴 작품이라는 ‘젠테스토어(Jente Store)’의 제안이 담겼습니다. 이번 캠페인에서 모든 모델들은 캔버스를 넥크리스처럼 목에 걸고 등장했는데요. 우리가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옷을 입는 행위가 빈 캔버스를 멋진 것들로 채워나가는 과정과 닮아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저는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입니다. 어느덧 제가 보고 있는 패션모델들의 룩, 스타일링, 그 모든 광경들을 여러분에게도 전해드려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내 마음먹었습니다. 스타일링 팁이 담긴 관찰기를 작성하겠다고. 그대로 따라 입고 싶은 사심 가득 담긴 캠페인 룩들, 그중 몇 가지를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릴게요!

패션은 틀을 깨는 상상에서 출발합니다. 안 입는 데님팬츠, 요리조리 바느질해서 가방으로 만들어 볼까. 선물 받은 반다나를 칭칭 꼬아서 보헤미안 스타일의 액세서리로 만들어 볼까. 뭐 이런 생각들이지요. 이런 고민들은 ‘필요’’에 의해서 첫걸음을 뗍니다. 가방이 없는데, 액세서리가 없는데, 가지고 있는 걸로 어떻게 할 수는 없을까.

물론 수영복을 탑으로 매치한 이유가 ‘입을 상의가 없어서’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집에 기깔나는 수영복가 있다면, 필요에 의해서 과감히 상의로 채택해볼 수 있겠지요. 실제로 스윔웨어는 말 그대로 ‘수영복’이긴 합니다만, 일상에서 멋 내려고 입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활동성과 착용감 좋은 스판덱스 소재로 시원한 여름날을 누리겠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에요. 아, 물론 수영복같이 안 보이는 점도. 어쨌든 중요한 포인트는 ‘캐주얼한 옷’과 매치하는 것입니다. 상큼한 디자인에 딱 달라붙는 실루엣을 살린다면, 시크한 여름날의 패션이 과연 무엇인지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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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이 가진 내추럴 톤. 하의가 그저 데님 하나였다면 분명 심심했을 테다. 나머지 액세서리 컬러를 팝하게 넣어서 포인트를 줬다. 퍼플 컬러의 롱 글러브로 허전한 팔을 꾸며주었고, 탱크탑을 연상케하는 매쉬 소재의 토트백을 활용하여 센스있게. 그리고 실버링과 헤어피스로 이루어진 네크리스로 유니크하게. 강한 스킨 톤을 가진 모델이라, 오히려 과감한 컬러가 더욱 돋보인다.

미우미우(MiuMiu)면 어떤 옷차림이든 상큼해집니다. 공주님, 영화 속 하이틴 주인공이 된 기분마저 들어요. 자신감 넘치는 여주인공들을 보면 활기차고 에너지틱한데요. 요즘 미우미우가 그렇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과정, 미우미우는 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고급스러워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건 미우미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느 부잣집 딸내미가 패션에 맛 들여서 비싼 옷 이것저것 걸치고 잘라내어 자기 스타일대로 입는 거. 딱 그거예요. 그러나 막상 강렬한 레드 컬러에 큼지막하게 미우미우 로고가 들어간 옷, 벨트가 눈앞에 있으면 멈칫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입어야 하지? 안타깝지만 우리는 공주님이 아닙니다. 옷을 입혀주는 스타일리스트가 없거든요. 그럴 땐 그저 ‘몰아주기’하면 됩니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주인공 삼아, 다른 아이템을 시크하게 매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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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한 레드 컬러의 타이트한 크롭탱크와 루즈하게 떨어지는 생지 부츠컷데님을 활용하여 극대비되는 느낌을 주는 것이 포인트인 룩. 룩을 더 세련되게 만들고 싶어 골드 포인트 스퀘어 벨트와 펄 네크리스, 캣아이 선글라스를 활용했다. 전반적으로 귀엽지만 섹시한 느낌.

'트렌드'보다 ‘다양성’에 주목하는 요즘 패션계. 트렌드를 보이기에 급급하던 패션은 이제 없습니다. 요즘은 다르죠. 디자이너가 최근에 느낀 생각들이나, 영감의 원천들을 패션쇼를 통해 보여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트렌드에 따라 소비하면 꽤 피곤해 지지만, 이제는 우리도 자기 생각에 맞는 브랜드의 옷만 택해서 소비하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시대 메세징을 가장 잘 하고 있는 브랜드는 바로 발렌시아가가 아닐까요?

얼마 전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FW 패션쇼는 ‘다양성’을 반영한 패션이 무엇인지 톡톡히 보여주었습니다. 보호 유리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발렌시아가의 쇼장은 그야말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광야’였어요. 환경 파괴에 대한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식 경고였어요. 눈 속에 움푹 들어간 발을 힘겹게 빼면서 모델들은 앞으로 워킹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옷들은 디자이너의 그런 철학을 반영합니다. 진실해야 할 때, 비판하고 싶을 때 각각 옷의 느낌이 달라요. 때론 정직하고, 때로는 삐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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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삐뚤게. ‘언밸런스’가 포인트다. 이너로 매치한 티셔츠의 그래픽이 잘 보이도록 셔츠 단추를 언밸런스하게 채우고 한쪽 소매만 걷어 글러브를 매치했다. 그리고 셔츠를 팬츠 안에 부분적으로 넣어 팬츠의 백셔츠 디테일이 잘 보일 수 있게 했다. 시크하지만 유니크하고 위트있다.

딱 달라붙은 옷은 매력적입니다. 그 누구나 몸매를 드러내는 자신감이 정말 멋있거든요. 애초에 날씬해야 하는 거 아니냐, 불평불만 많지만 무슨 상관인가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온 몸을 뒤덮는다는 사실만으로 끝입니다. 옷 잘 입는 사람들 공통이죠. 원하는 대로 입는 것.

가령 섹시한 레깅스가 마음에 들면, 끝까지 끌어올려 보는 겁니다. 허리 위까지요. 그러나 레깅스가 삐져나온 것이 속옷처럼 느껴진다고, 한국인이라면 이런 노출이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이럴 땐 의도했다는 듯이 약간의 ‘섬세한 양념’으로 버무리는 겁니다. 패션의 풍미를 끌어올려 줄 액세서리. 긴 실버 액세서리를 허리 선을 따라 차분히 감아주었습니다. 실버 액세서리와 어울리는 블랙 레깅스, 블랙 데님. 이 정도면 엉덩이 위로 살짝 보이는 레깅스는 의도했다고 말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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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타이트한 실루엣으로 연출. 상의에 크림톤의 탑을 매치하고 나머지는 다 블랙톤으로, 그리고 실버 액세서리 활용으로 포인트를 준 룩. 옆구리 부분이 컷아웃 되어있는 크롭탑으로 섹시한 느낌도 넣었고, 레이스 레깅스로 룩의 디테일을 살렸다. 퀄팅 데님 스커트도 룩에서 꽤나 재미있는 요소. 전반적으로 페미닌한 실루엣에 실버 액세서리 활용으로 섹시+시크+펑크 느낌이랄까.

이제 여름입니다. 옷장 정리할 시기가 왔네요. 깊숙이 숨어 있던 옷을 꺼내다 보면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 이런 옷을 무지성으로 살 때가 있었지.

어떤 형태이든 우리 모두는 예술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손을 거친 옷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쓰임에 빛을 발하지요. 그러니 과연 일상에서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옷인지 의심하지 말고, 뭐든 당당하게 원하는 대로 입어 보시길. 자기 멋은 자기가 덧칠하기 마련이니까요. 여러분이 EGO를 찾을 때까지, 저희 EGOZINE은 앞으로도 꾸준히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