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과 추운 겨울 사이, 찬바람과 함께 서성이고 있다면 ‘항공 점퍼(Flight jacket, MA-1)’에 주목할 때입니다. 발끝까지 몸을 보호해 주는 거대한 몸집이나 알록달록한 컬러 블록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항공 점퍼의 매력은 분명합니다. 무려 50년가량 미국의 전쟁 역사를 함께 해온 유일한 아우터가 아닌가요. 미국 내에서는 ‘미국 최고의 아우터’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을 정도니.

오늘은 현대에 들어서 전 세계인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떨치고 있는 항공 점퍼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항공 점퍼를 어떻게 입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슬쩍 꺼내어 볼 수 있는 스타일링 가이드까지 제공해요. 항공 점퍼를 가장 멋스럽게 탐닉하는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기대감을 가지고 오늘 EGOZINE을 봐주시길!

‘항공 점퍼’, 영어로는 플라이트 재킷(Flight Jacket)이라고 합니다. 제트기에 탑승하는 파일럿이 착용하는 재킷으로, 군용품을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가 지금은 대중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발전했어요.

1940년대, 제트기의 발명으로 높은 고도까지 비행할 수 있게 된 조종사들은 날렵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몸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재킷이 필요했습니다. 기존에 입던 가죽 재킷인 B-15는 거대하고 무거운 양털 솜으로 제작되어 활동이 매우 불편했고, 그렇다고 무게에 비해서 따뜻하지 않아서 파일럿이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저체온증에 걸리기 십상이었어요.

미국 녹스빌에 있는 작은 군용 의류 브랜드, Alpha industries(알파 인더스트리)는 이를 기회 삼아 사업을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즉각 새로운 항공 점퍼, MA-1을 제작했어요. 이는 곧장 미국의 모든 파일럿들에게 보급될 정도로 좋은 퀄리티를 자랑했는데요. 기존 B-15 재킷의 모피 칼라를 니트로 대체하고 소재는 나일론을 선택한 것이 가장 큰 특징. 미국 군인들은 MA-1의 나일론 원단 덕분에 날씨나 환경에 따라 전면의 지퍼를 열고 닫으며 신체를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MA-1의 디자인에는 알파 인더스트리의 세심한 배려가 녹아져 있어요. 가령 겉감은 세이지 그린이지만, 안감을 오렌지처럼 밝은 컬러로 매치한 것. 뒤집어 입으면 오렌지 컬러의 재킷이 되도록 리버시블 타입으로 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항공기가 격추되어 파일럿이 추락했을 때, 점퍼를 뒤집어 입으면 강렬한 오렌지 컬러가 아군의 눈에 쉽게 띄어 구조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전쟁터에서도 오렌지 컬러는 부상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당시 미군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MA-1의 활용성에 끊임없는 찬사를 보냈다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오랜 냉전으로 인해 군복 수요가 늘자 알파 인더스트리는 하청 업체를 운영할 정도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미군들은 군 복무가 끝나면 자기가 입었던 MA-1을 집으로 들고 갈 수 있었는데, MA-1이 실용성과 멋을 겸비한 옷이라는 사실은 대중들 사이에서도 일파만파 퍼져나갔어요. MA-1은 이내 소규모 매장에서도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방부 소속 의류들을 도난하여 판매하는 뒷거래 암시장까지 성행할 정도였죠.

알파 인더스트리는 엄청난 수요에 힘입어 MA-1을 패션으로 승화시키고자 했습니다. 패션용과 군납용을 구분 짓는 ‘3선 라벨’을 붙여서 대중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죠. 활용도 높은 디자인, 격렬한 활동에도 끄떡없는 견고함, 오래될수록 멋스러워지는 에이징으로 인해 스트리트 패션을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었어요.

Alpha industries는 그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Palladium(팔라디움), Dr.Martins(닥터마틴), Ben Sherman(벤셔면), Stussy(스투시), IISE(이세) 등 다종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꾸준히 이슈를 일으켰습니다. 전쟁과 함께 유구한 역사를 갖게 된 알파 인더스트리와, 정체성 확고한 다른 브랜드와의 합작은 매번 성공적이었어요. 최근에는 미국 항공 우주국 NASA와 손잡아 성공을 터뜨렸으니 말이에요.

항공 점퍼의 근본, MA-1 하나로 다채롭게 완성하는 스타일링 팁.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하고 있는 알파 인더스트리(Alpha industries)의 항공 점퍼로 직접 연출한 3가지 리얼웨이 룩을 소개합니다.

반짝거리는 질감, 세련된 디자인과는 반대로 항공 점퍼는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이제는 아실 겁니다. 그런데 세대를 초월하는 이 아이템을 가장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시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제대로 호흡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한겨울이 오면 아무래도 몸을 뒤덮는 검은 롱코트만 고집하게 될 테니까요. 자, 적당히 추운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미국 최고의 아우터라 불리는 이 ‘항공 점퍼’해보길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