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인더스트리얼 무드’의 카페를 방문하고는 반해버린 거였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잠입해서 몰래 놀던 아파트 공사장처럼, 인더스트리얼 공간은 마치 날 것의 보물창고 같았다. 억지 감성 따위도 없었다. 솔직한 모습이었다. 거친 소재 또는 녹슬고 버려진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 금속과 쇠 같은 차가운 소재를 활용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집 인테리어를 인더스트리얼 무드로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먼저 창을 통과하는 자연스러운 채광을 위해서 커튼을 모두 없앴다. 하늘하늘한 커튼 대신에 투박한 러그를 구매했다. 큰 공장이나 창고에서 볼 법한 빈티지한 러그다. 시작이 좋았다. 아침에 한 번 밟고 출근하면 분명 기분이 좋을 터였다.

반려 식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우연치 않게 식물 편집숍에 들린 후였다. 살짝 벌어진 은난초를 마주한 순간, 이내 이것을 반려식물 삼아 집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으리라고 짐작했다. 무척이나 예뻤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구매해서 집으로 왔다. 그리고 현관 앞 베이지색 스툴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물 빠짐이 좋은 반그늘이라 위치도 딱 좋았다.

스툴 위에 놓인 은난초의 모습은 가지런했다. 잎은 긴 타원형에 끝은 뾰족했으며, 몸에 털 하나 없는 예쁜 모양새였다. 5월이 되면 하얀색으로 꽃이 핀다고 한다. 마치 흰 털 실로 뜬 작은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던데. 그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우리집의 거친 인더스트리얼 무드와는 정반대일 테지만. 나는 이런 묘한 조합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봄을 기다리며 3일에 한 번씩 꾸준히 물을 주고 있다.

직장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쌓이는 빨랫감을 하루 만에 당해내지 못한다. 꾸준히 빨래를 했어야 됐는데, 그게 참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탁을 해도 문제다. 건조된 옷들을 하나씩 개는 것도 일이다. 옷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그 몸집이 거대할수록 치우고픈 마음의 에너지가 잦아든다. 퇴근하고 침대에 뻗으면 쌓인 옷더미가 시야에 들어온다. 물끄러미 본다. 곧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릴 터였다. 옷장 옆 수납장에게는 이런 풍경이 익숙하겠지, 나는 상상한다. 양말, 속옷, 잠옷 등 나누어서 패널 별로 넣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집 주인은 참 게으르다. 이렇게 생각하겠지.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이란. 산꼭대기에 올라있는 듯 숨이 벅차다. 이룬 것들, 포기한 것들 모두 메아리를 외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럴 땐 책상에 앉아서 꾸깃한 일기장을 꺼낸다. 책상 위를 비추는 은은한 조명은 꽁꽁 숨겨뒀던 나의 속마음을 선명히 비춘다. 오로지 내 마음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물살이 잦아들듯 주변 소음이 희미해진다. 이렇게 빛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어둠으로부터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던데. 밝은 조명 아래에서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다. 어둠은 오직 오목하게 접힌 일기장 사이에만 존재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