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와서 좋습니다. 주말에는 하늘이 어스레해지면서 마른 땅에 비가 내렸지요. 톡, 톡 비가 오는 소리가 들리면 저는 서둘러 창문을 엽니다. 마른 땅이 젖을 때 풍기는 향기로운 흙냄새가 좋거든요. 비올 때 흙냄새가 나는 이유는 박테리아가 내뿜는 ‘지오즈민(Geosmin)’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이라는데, 여기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게 참 부러워요. 고유의 냄새, 특징이 있는 것. 저 역시 마음 냄새나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서요.

아무튼, 비 오는 날의 정취는 또 그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흙냄새 가득한 조용한 거리를 걷다가, 실내에 들어가서 사랑하는 사람과 몸을 녹이는 낭만이랄까요. 그래서 오늘은 비 오는 날에 방문하기 좋은 한남동의 공간 세 곳을 소개해 드립니다. 공간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우산 아래 고군분투하는 시간은 짧을 겁니다. 그리고 비가 오더라도 막상 나가보면 괜찮습니다. 한적하잖아요.

‘공기(Gongi)’는 예약을 안 하고 가면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이미 알려진 맛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별한 공간을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테니 소개해 드립니다. 전통주, 와인과 함께하는 한식을 즐길 수 있는 오픈형 레스토랑이에요. 정성 어린 따뜻한 밥을 담는 ‘공기'와 숨을 쉬는 공기의 이중적 의미로 생활하며 없어서는 안 될, 늘 존재하는 필수 요소라는 ‘공기’의 이중적인 뜻을 담아 가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죠.

모던한 분위기의 공간으로 오픈형 키친을 통해 조리과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음식은 인공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고, 국내산 제철 재료를 사용해 조리되는 것이 특징. 대표 메뉴는 하루 동안 쌈장 속에 재워 볶아낸 항정살 쌈장구이인데요. 양배추장아찌와 곁들여 먹으면 더욱 깔끔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직접 방문한 에디터의 최애는 가지새우강정과 낙지탕탕이숙회.

한남동 메인 거리가 아닌 가구거리에 위치해 있지만, 어떻게 알고 오는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좋은 브랜드를 좋은 상태로 판매하는 의류 빈티지 숍, ‘우니쿠(ÙNICO)’에요. 우니쿠는 '유일한', '오직 한 사람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처럼 이곳은 유니크한 빈티지 옷들로 가득 넘치죠.

오리지널 밀리터리부터 클래식, 워크웨어, 액세서리, 80년대 티셔츠, 90년대 리바이스(Levi's) 등 제품군이 정말 다양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마음에 드는 옷만 발견한다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구매하게 되는 곳이죠. 뭐든 싸게 싸게 모아서 판매하는 빈티지 숍이 즐비하는 가운데, 디렉터의 시선으로 선별된 좋은 브랜드 옷을 판매하는 빈티지 숍이 몇 없어서 더욱이 소중한 곳.

수제 카라멜과 카라멜 디저트를 만드는 팝업 디저트 바, ‘카라멜리에오’. 카라멜을 사랑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아이스크림과, 밤의 맛과 향이 조화로운 시그니처 파르페인 카라멜 밤 파르페로 점차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이거든요. 

공간에 들어서면 카라멜 색상을 암시하는 은은한 주황색 불빛과 호텔 프론트처럼 꾸민 고급스러운 진열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전반적으로 유럽풍 우드 가구와 구리 오브제로 톤앤매너를 맞춘 감각적인 공간이에요. 여기서 먹는 파르페는 정말이지, 마치 동화 속에서 먹는 디저트 같습니다. 그저 파르페 하나지만, 여러 재료가 레이어드되어 식감이 다채로워요. 새로운 차원의 디저트가 궁금하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비 오는 날이면 꼭 이 노래를 듣습니다. ‘Close to you’. 원곡 가수는 따로 있지만 저는 쏠(Sole)과 따마(Thama)가 커버한 버전으로 듣곤 해요. 특히 가수 쏠(Sole)은 ‘Ride’라는 노래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목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몇 시간 동안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더라고요.

“음악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갈 수 없는 곳까지 저를 데려다줘요. 음악을 통해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거죠.” 쏠이 마리끌레르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쏠이 커버한 이 곡을 듣고 이 말에 공감했어요. 여러분도 그냥 들어보면 아실 겁니다. 전주가 들리는 순간, 눈앞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뉴욕의 어느 한적한 거리가 펼쳐질 테니. 사랑하는 사람과 한 우산 아래에서 발맞춰 걷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