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줄여서 ‘드반’이라고도 부릅니다. 1986년, 벨기에에서 설립된 패션 하우스에요.

화려하고, 우아하며, 신사적인.

또한 오직 패션만을 사랑하는
낭만적인 브랜드입니다.

향수나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여 수익을 챙기는 타 패션 하우스와 달리, 컬렉션에서 옷의 비중을 90% 이상으로 꾸준히 유지하고 있거든요!

앤트워프 식스(Antwarp 6): 마리나 이, 드리스 반 노튼, 앤 드뮐미스터, 월터 반 베이렌동크, 더크 반 계인, 더크 비켐버그.

두 번째, 이들은 광고를 싫어합니다.

드리스 반 노튼의 팬이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유명한 모델을 쓰지도, 셀럽이나 인플루언서에게 옷을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광고에 쓸 돈을 런웨이에 투자한다고 하는데, 이유가 참 재밌어요.

패션 브랜드가 광고를 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뮤즈’를 골라야 합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특정한 사람들. 드리스 반 노튼은 여기서 의문을 품게 됩니다. 뮤즈, 그건 누구여야 할까요. 소년? 소녀? 어릴까요? 늙을까요? 금발? 흑발일 수도 있죠. 피부색은? 이미지는? 로맨틱한가요? 터프하고 근육질인 남자인가요? 말랐나요? 

결국 뮤즈를 정하고 광고를 한다는 것은, 광고에 보이는 그 사람이 대변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치면 패션쇼는 좀 더 중립적이죠. 이미 50여 명의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브랜드를 몇 개의 이미지로 요약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뿐만 아니라 광고를 많이 하면 그 옷의 정체성은 특정한 시기와 함께 묶여버리곤 합니다. 드리스 반 노튼은 그걸 매우 잘 알았어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옷'을 만들기 싫어했죠. 언제입어도 예쁜 옷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 단단한 철학 덕분에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광고를 하지 않으며 브랜드를 운영할 수 있었고, 시기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중립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1991년 첫 남성복 컬렉션에 이어 파리 패션위크에서 본격적으로 여성 컬렉션을 선보이게 된 것은 1993년. 

당시 질 샌더(Jil Sander), 프라다(Prada) 등 미니멀리즘 패션이 유행이었는데, 드리스 반 노튼만의 개성 넘치는 패턴과 프린트는 그런 패션씬에 새로운 활기를 더했는데요. 아름다운 색과 프린트를 보여주는 명성을 보다 뚜렷이 확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등장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세계적인 록밴드 너바나(Nirvana)도 1993년 드리스 반 노튼의 컬렉션의 옷을 입었을 정도였어요.

2009년 FW ready to wear.

블라우스와 유려한 바지 위에 입을 수 있는 편안한 핏의 블레이저, 드레이핑 드레스, 아이젠하워 재킷, 그리고 어스름한 저녁 긴 치마 위에 걸쳐 입을 스웨터 등. 톡톡 튀면서 오묘한 색상 조합은 FW 시즌 특유의 어떤 둔한 느낌도 없애주었습니다. 여기다 뿔테 선글라스와 진한 레드 립스틱 조합이라니. 명백히 '복고'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좋으면서 단순한' 옷을 드리스 반 노튼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템플릿에 가까웠죠.

80,90년대 테크노 레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2023 FW 맨즈 컬렉션. 신디사이저와 일렉트릭 드럼이 마주 보는 강렬한 라이브 연주와 함께, 파리 11구 주차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드리스 반 노튼은 여전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올블랙 룩으로 시작한 컬렉션은 점차 다양한 사이키델릭 무드의 패턴, 풍부한 질감과 컬러로 변모했는데요. 그러나 이번 시즌은 유난히 '테일러링'에 집중한 모습입니다. 과장된 어깨와 잘록한 허리,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오버사이즈 실루엣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에요. 가령 타이트한 톱과 허리를 잘록하게 조이는 하이웨스트를 함께 입거나, 라운지 웨어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블레이저를 넘실거리는 스트랩 디테일 팬츠와 매치하는 식이었죠.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집에서 만든 수선물처럼 손으로 꿰맨 자수를 통해 외투의 허리 부분을 강조하고, 핀스트라이프 블레이저의 가장자리를 일부러 헐렁하고 해어지게 표현한 디테일.

드리스 반 노튼 ‘옷을 입다가 불가피하게 다시 뜯고 고쳐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옷감이든, 디자인이든 버려지면서 그대로 산산조각 날 게 아니라고요. 그보단 그런 해짐 조차 자수로 바꿔버리며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에 집중합니다. 늘어지고, 떨어지고, 다시 꿰맨 그 흔적들은 이미 우리의 정체성 일부가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이들이 ‘진정한 소장품’의 본질일 것이라고요.

패션이 빠르고 소란할수록 오히려 꿋꿋한 브랜드들에 주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입김이 없어도, 어느 유명한 광고가 따라붙지 않아도 홀로 제 색깔을 고수해서, 그래서 오히려 더욱 빛나는 드리스 반 노튼처럼요. 그들의 옷은 대개 색채로 넘치고 화려한 패턴으로 가득 차 있지만, 무엇보다 잔잔하게 서사가 흐르는 브랜드라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꽃에 대한 사랑, 이국적인 신비, 그리고 절대 낭만을 포기하지 않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까지 갖춘 이들이거든요.

유난히 트렌드가 빨리 바뀌었던 것 같은 올여름입니다. 오늘 EGOZINE이 오랜만에 만난 정겨운 친구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네요. 낭만 즐기는 EGOZINE 구독자들만큼은 앞으로도 드리스 반 노튼의 한결같은, 행보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