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바람의 계절입니다. 긴 연휴 동안 선선한 바람친구의 생일파티를 위해 떠났던 녹사평역. 그날은 왠지 모르게 선명합니다. 지갑이 얇았던 가난한 대학생 시절이 었습니다. 돈을 모아 케이크를 사서 친구를 나름 분위기 좋은 펍으로 초대했지요. 당시 나눴던 대화는 가물가물 하지만, 적당히 미지근한 공기 속에서 피자와 함께 맥주 두 어잔을 마신 것은 기억합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해 이 야기했었어요. 언젠가 우리 취직하고 돈도 많이 번다면, 그때는 이렇게 피자를 먹고 2차로 좋은 바에 가자. 하이볼도 마시는 거야.

녹사평역을 지나가면 모든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던 당시의 마음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궁금하군요. 여러분은 녹 사평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까요. 연인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혹은 친한 친구와 취향의 공간을 발굴해 내는 이야기, 그 뭐든 좋을 겁니다. 따라서 오늘은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정서를 일으킨다는 동네, 녹사평으로 모셔볼까 합니다. 보다 선명하게 남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며.

피자 덕후라면 주목해 주세요. 녹사평의 한적한 골목에 활기를 더한 이곳. 뉴욕의 자유와 낭만을 주제로 한 피 제리아, '어퍼이스트'를 소개합니다. 어퍼이스트는 그들만의 소프트도우, 특제 토마토소스 그리고 신선한 치즈가 어우러진 피자가 맛있는 피자 맛집입니다. 패션 디렉터이기도 한 오너셰프의 자연스러움과 빈티지한 멋을 담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이기도 하죠.

녹사평역 3번 출구에서 육교 건너 언덕길 올라오면, 시선을 끄는 조그마한 주택이 나오는데요. 그곳이 바로 ‘헤미안 커피바’. 일본 교토 골목의 어딘 가에 위치해 있을 것만 같은 감성이 이곳은 낮에는 커피와 디저트를, 밤에는 와인과 위스키를 판매하는 공간입니다. 협소한 내부를 자랑하지만 그런 고즈넉한 일본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취향일 곳이죠. 벽과 바닥 모두 콘크리트를 살려 빈티지하면서도, 우드 소재로 포인트를 주어 편안한 무드를 강조했거든요.

녹사평 좁은 골목 어딘가에 위치한 'PDF SEOUL’. 사진(Photo)과 디자인(Design), 그리고 패션(Fashion) 을 사랑하는 이승현대표가 각 이니셜을 조합하여 탄생시킨 특별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이승현 대표가 오랜 기간 걸쳐서 수집한 사진집과 아트북 컬렉션, LP,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관련된 아트북을 판매합니다. 꼭 전문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편하게 방문하여 값진 아이디어를 얻어갈 수 있지요.

고 나면 선명한 이미지가 남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가사가 마음을 울리거나, 사운드가 웅장하거나, 노래 속 에 서사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성시경의 ‘희재’, 너의 이름은 ost인 ‘Sparkle’같은 곡 들을 꼽고 싶네요.

얼마 전 기리보이를 좋아하는 제 친구에게, 기리보이 노래 중에서 가장 선명한 노래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선명한’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기웃하더니 이내 이 곡을 추천해 주더라고요. ‘내가너를사랑하지않는다는것은 망할너의친구들의아이디어같아’. 아, 정말 곡 제목부터 기리보이답다고 할까요. 노래 ‘호구’만큼이나 기리보이 의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내주는 명곡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망할 너의 친구들의 아이디어 같아.”

말 그대로 연애를 할 땐 주변 친구들 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너와 나, 사랑에 집중해달라는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지요. 귀에 쏙쏙 들려오는 딕션과 솔직한 가사까지, 여러모로 매력적인 곡입니다. 사랑을 하면서도 확신이 없어서 주변에게 고민 상담을 했던 과거의 저에게 장난삼아 들려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