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말로 뱉을 때조차 입술 사이로 건조한 공기가 새는 이름입니다. 한땐 이 계절을 미워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달짝지근하게 발음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난 크리스마스 날 손수 만든 목도리를 받았던 기억, 온수 매트 위에서 곯아떨어졌던 순간, 눈 올 때 방문했던 뜨거운 스파, 친구들과 알딸딸 기분 좋은 채로 가졌던 연말 파티, 아버지께서 보내주셔서 하나씩 까먹는 감귤. 앞으로 찾아올 무수한 겨울들은 여전히 추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자신을 사랑하게 합니다. 시리도록 따뜻한 기억들로요. 

겨울을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무작정 추위를 피하려 소중한 것들을 뒤로 미루기 마련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기억을 써 내려가야 합니다. 함께 따뜻한 식사를 하고 이야기도 나눠가져야 해요. 겨울은 그러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니까요. 오늘은 서빙고역에서 겨울의 한 페이지를 작성해보길 바랍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통창 너머로 문득 새하얀 눈이 마법처럼 쏟아져 내릴지.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운 주택가 사이.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통유리로 되어있는 작은 카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이름하여 ‘어반 플랜트 서빙고’. 물과 돌,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던한 건축물로 이름을 알린 카페에요. “우리는 새로운 흔적 위에 새로운 시간을 쌓아 올립니다.” 옛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붕, 부식되고 노후화된 벽돌, 바로 옆 사당 한옥 뷰와 세월이 묻은 빛바랜 돌담까지. 이 모든 요소를 통창으로 즐길 수 있지요.

하나의 큰 벤치형 자리에 작은 티 테이블들이 딸린 독특한 구조에, 중간중간 돌과 모래만으로 표현된 산수 풍경은 마치 자연의 한 조각을 머금고 있는 듯한데요. 마음까지 안온해지는 이 공간 속에서 즐기는 커피는 또 색다릅니다. 산미가 너무 강하지 않은 고소한 커피를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돌 모양 무스케이크와 맛보시길 바라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옛날 돈까스와 잔치국수라는 생소한 조합. 하지만 에디터는 이 조합을 맛보기 위해 자주 서빙고역으로 향합니다. ‘돈까스잔치’는 개그맨 이영자 씨가 소개한 식당으로, 일본 우동학교를 졸업한 사장님이 평소 즐겨먹던 돈까스와 국수를 재개발했다고 하는데요. 이미 맛으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유명한 맛집이지요.

국내산 등심과 바삭함이 살아있는 습식 빵가루가 만난 왕돈까스와 남해안 멸치와 천일염으로 맛을 낸 잔치국수, 각종 과일과 채소로 숙성시킨 국물 비빔국수까지. 방문하는 이의 취향 따라 즐길 수 있는 정성스러운 메뉴가 양껏 준비되어 있는 곳입니다. 추운 날씨에 문득 뜨뜻한 경양식 돈까스가 그리워진다면, 이곳으로 향해 보면 좋겠네요.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 있는 독립서점, ‘서사, 당신의 서재’. 굉장히 비밀스러운 위치에 자리 잡은 예쁜 서점이라 많은 사람들이 알지 않기를 바라는 욕심이 생기는 곳입니다. 이곳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녹아든 공간이에요.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한 채 사색하길 바란다고 하죠.

날씨가 추워지면 무거운 우디나 머스크 향수를 뿌린다고들 하는데, 저는 오히려 달콤한 분위기의 향수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겨울 특유의 진한 붉은빛이 있잖아요. 크리스마스처럼 처럼요. 겨울이 오면 장미나, 아이리스 등 지금 이 계절에는 맡기 쉽지 않은 강한 꽃향기에 끌리고, 그 향에 맞춰서 음악도 달짝지근한 곡을 듣게 되네요.

흑백의 계절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보내고 싶다면, ‘Love’를 들어보시면 좋겠어요. 딩고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로 발매했으며 래퍼 로꼬와 배우 이성경이 함께 부른 곡입니다. 청량한 사운드와 기분 좋은 멜로디가 로꼬의 가사와 이성경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만나 달달한 설렘을 전달하죠. 현재 딩고 뮤직 ‘세로 라이브’에서 이곡의 라이브 버전 또한 즐길 수 있으니. 자칫 사랑의 불씨가 꺼지기 쉬운 겨울날, 다시 마음속에 간질거리는 설렘을 안겨줘보는 건 어떨까요. 안 그래도 곧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