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리지 않는 달콤함, 3가지 Gourmand 향수

미리보기

2021. 12. 27.

EDITOR'S LETTER

저의 룸메이트는 특별한 날이면 주변 지인들에게 향수를 선물 받아요. 특정 향을 고집하는 성격도 아닌 덕분에, 함께 지내는 저는 매일같이 다채롭고 풍성한 향을 경험합니다. 최근에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바이더파이어플레이스’를 자주 뿌리던데요. 막 샤워를 마치고 난 친구에게서 은은한 구운 밤 향이 뿜어져 나오는데, 따뜻한 겨울과 참 닮은 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제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면 우디하고 달달한 바닐라 잔향이 시트에 남아요. 그날은 제가 달콤한 잠을 청할 수 있는 날입니다. 진한 감성과 달짝지근한 향기에 취해 몸이 노곤하게 풀려갈 때면 그리웠던 사람들을 꿈속에서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하죠.

이 ‘향잘알’ 룸메이트 친구가 언젠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사람의 향이 궁금하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 무의식을 의식으로 바꿔 놓는 그 익숙한 향에 고개를 들어 말을 걸 뻔했다죠.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순간 그분을 관찰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고 해요. 음악 취향은 어떤지, 성격은 어떤지 잠깐이나마 상상해 보는 여유도 누렸다고.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지나 갑니다. 그중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하는 사람들은 특징이 있죠. 향이 나는 사람들. 그런 면에서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존재감의 비결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나와 어울리는 향수’일 겁니다. 여러분이 분위기도 마음도 ‘향기로운’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면, 나와 어울리는 향수를 찾는 EGOZINE의 여정에 계속해서 동참해 주시길.

‘우디’, ‘머스크’, ‘파우더리’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호불호가 꽤나 갈리는, 달리 말해 마음에 들기만 한다면 독보적인 취향을 가질 수 있는 ‘구르망(Gourmand)’향수 세 가지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저에게 달콤한 꿈을 선사해 주는 ‘바이더파이어플레이스’도 구르망 향수이니, 궁금한 분들은 시향해 보시길.

GOURMAND fragrance

구르망은 '구어망드'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구르망은 프랑스어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미식가'를 의미해요. 그래서 구르망 향을 맡으면 후각적 자극과 더불어 ‘먹고 싶다‘는 미각적 자극을 함께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죠.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향이나 디저트 계열의 향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노트이기 때문. 대표적인 향료로는 바닐라, 꿀, 초콜릿, 캐러멜이서부터 더 이국적이고 달콤한 맛의 조합인 컵케이크, 크림 브휠레 등까지 이릅니다.

구어망드는 오리엔탈 계열에서 파생됐어요. 따라서 바닐라를 주 골격으로 사용하게 되어 대체적으로 달달한 향을 지니고 있죠. 부드럽고 따뜻해서 차가운 공기와 만났을 때 제 매력을 온전히 다 뽐내 겨울에 쓰기 제격입니다.

1. Thierry Mugler Angel EDP

일렁이는 은하수 위

별빛을 어루만지며 노래하는 천사.

2006년에 개봉한 영화, '향수'를 아시나요? 주인공 그르누이는 그의 불행한 삶 속에서 유일한 행복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만의 천재적인 후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었는데요. 아름다운 여인이 가진 매혹적인 향을 사로잡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조금은 잔혹한 내용의 영화입니다. 화려함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서사지만 독특한 소재인 ‘향수’를 활용했다는 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묘사, 시대적 배경의 연출이 훌륭해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조향사가 있습니다. 이름은 '티에리 뮈글러'. 지금 소개해 드리는 이 향수의 브랜드명이기도 합니다. 그는 1973년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했어요. 그러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담긴 난해한 패션으로 시장에서 각광받지 못했죠. 재정적 실패를 겪은 티에리 뮈글러는 2003년 기성복 사업을 접고 향수 사업에 발을 들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 즉 신비로운 우주천체 컨셉을 그대로 향수에 적용했죠. 결과는 대성공.

이 ‘티글리 엔젤’향수는 뮈글러가 1992년에 처음 선보인 작품입니다. 동시에 최초의 구르망 향수라고 평가받고 있기도 해요. 우주, 판타지, 엔젤, 에일리언 등 4차원적이고 이상적인 소재에서 영감을 받아, 누군가는 티에리 뮈글러의 정체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소개하기도 하죠. 우주에 마구잡이로 흩뿌려져 있는 별들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오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특징.

아쉽게도 티에리 뮈글러는 한국에 정식 유통이 되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 면에서 흔하지 않은 특별한 '니치 향수'를 즐기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어요. 가장 대표적인 라인인 엔젤과 에일리언부터 도전해 보시길.

밤하늘에 펼쳐진 별을 보고 있노라면 손을 뻗어 쓸어 담고 싶다는 충동이 들곤 해요. 별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건 달콤한 초콜릿 그리고 캐러멜. 그 매력에 샌달우드와 바닐라, 머스크도 푹 빠져버린 듯 함께합니다. 덕분에 우디함과 몽환적인 느낌 섞여 상당히 오묘한 분위기를 선사하죠.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을 표현해 주는 건 베르가못과 듀베리. 톡톡 튀는 이들 덕분에 엔젤을 분사하는 순간, 눈 앞에 신비로운 보랏빛 은하수가 펼쳐집니다.

2. Kilian Black Phantom EDP

새하얀 눈이 내리는 텅 빈 고원,

검은 수트 위로 쌓이는 고독의 결정체.

언젠가 봄이 오면 달콤하게 녹아내리길.

킬리안, 향수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씩 들어보셨을 브랜드죠. 킬리안은 '후각의 소설', '소설의 후각화'를 추구하는 브랜드로, 컬렉션이 하나의 소설책 같은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브랜드 철학이 ‘Perfume as art’인 이유입니다. 소설, 문화, 예술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하는 킬리안 향수는 특유의 고혹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킬리안은 부제가 붙어 있는 작품들이 많죠. 블랙 팬텀의 부제는 Memento Mori.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에요. 킬리안은 이 구절을 해적들의 모토라고 설명하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인 '럼'을 담은 블랙커피가 영감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끝없는 바다를 항해하며 살아가는 해적들의 보물선이 모티브. 해적들에게 죽음은 보이지 않지만 늘 옆에 있는 존재이죠. 그래서 꽃으로 장식된 해골이 웃고 있는 이 패키징으로 우리들에게 현재를 즐기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킬리안이라는 브래드를 만나 향수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우리의 삶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이 ‘현재’라는 일시적인 순간을 즐겨보라는 것.

블랙 팬텀은 말 그대로 검은 환상, 혹은 유령. 커피, 럼, 아몬드, 카라멜, 그리고 초콜릿이 주를 이루는 이 향은 이름과 딱 어울리게 치명적인 향기를 자랑합니다. 치명적인 시아나이드 향은 죽음의 미소처럼 위협적으로 가려져 있죠. 바다 한가운데서 피어오르는 흑색 연기 같은 느낌이랄까요. 신비스러우면서 퇴폐미가 넘치는 향입니다.

바다는 해적이 다스리고 블랙 팬텀은 ‘럼’이 지배합니다. 바다를 무대로 매일 밤 벌어지는 해적들의 파티.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바다처럼 고요해지면, 그제서야 암흑을 내려다보며 끝없는 항해의 낭만과 슬픔을 떠올리는. 아몬드의 고소한 향과 초콜릿, 바닐라의 관능적인 잔향은 그들이 꿈꾸는 신비로운 보물들을 닮아 있어요. 미스터리하고 센슈얼한 이미지를 원하는 분께 추천합니다.

3. Montale Chocolate Greedy EDP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가는

그 모습에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아마 영원히 그럴 거야 평생.

초콜릿 향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몬탈'의 초콜릿 그리디. 초콜릿 향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어요.

‘몬탈’은 정말 생소하실 텐데요. ‘몬탈’의 설립자 ‘Pierre Montal(피에르 몬탈)’은 본래 아랍에서 왕족들을 위해 향수를 만들던 조향사였어요. 고향인 파리로 돌아온 피에르 몬탈은 동양적인 기운을 불어넣은 향수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죠. 그래서 몬탈의 향은 값비싼 우드, 플라워, 오일 등 아랍의 전통 향료를 활용, 동양적인 풍미가 가득 느껴지는 것이 특징.

이 풍성한 향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모든 공병이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되죠. 외부의 빛을 차단하여 향이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몬탈 향수의 지속력과 확산력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

인상이 참하다고, 겉모습이 순수하다고 속도 항상 달콤한 것은 아닐 터. 크리미하고 보드라운 밀크 초콜릿 질감이지만, 반대로 향은 크런치하고 씁쓸한 다크초콜릿에 가깝습니다. 외유내강의 표본. 살짝 덮은 오렌지 색 베일에 가려져 있던 강한 내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질 것. 의외로 이렇게 직설적으로 풍기는 초콜릿 향수는 흔치 않아 더 귀하게 다가오는.

EDITOR: 허아란

DESIGNER: 황예인, 유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