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향수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이를테면 함께 길을 걷다가 스쳐 지나가는 낯선 향기에 딥티크 향수인지 조말론 향수인지 아웅다웅 실랑이를 하는 식이에요. 어떤 노트를 베이스로 제작된 향일지 전문가 마냥 지식을 늘어놓으며 지레짐작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향을 맡았습니다. 향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순간 숨을 흡, 하고 들이킬 정도였지요. 궁금증으로 도배된 제 얼굴을 본 친구는 친절히 ‘네롤리(Neroli)'인 것 같다고 말해주었는데요. 저는 가로수길에 위치한 딥티크 플래그십 스토어에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만났어요. 부드러운 그린 플라워와 상큼한 시트러스 향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이중성을 가진 ‘네롤리(Neroli)’를요.

여름과 어울리는 청량감과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지는 나른함. 또 시간이 지나면 의외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네롤리 향에 취해볼 시기가 왔습니다. 다른 계열의 향수와 섞일 때도 무궁무진한 하모니를 이뤄내는 네롤리 향수 3가지를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주시길.

너에게 선물할 사과 넷, 오렌지 둘

리본으로 돌려매고 벗기고, 또 싸매고

과일바구니 만드느라 밤을 샜웠더랬다

2005 년, 함께 구찌에서 일했던 도메니코 드 솔레 (Domenico De Sole) 와 함께 자기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톰포드’를 설립했습니다. 디자이너 톰 포드는 자신이 추구하는 패션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는데요.

시원한 선의 조화, 누드 컨셉의 광고, 어두운 색상, 그리고 모델들의 고혹한 눈빛까지. ‘어딘가 모르게 섹시하다’, ‘유혹적이다’라는 평을 받는 톰포드, 2006년에 탄생한 향수 라인이 상당히 관능적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톰포드에는 꽤나 수위 높은 향수 이름들이 많지요. 이름 따라 섬세하고 단단하면서도 또 섹시한 향이 많습니다. 단점이라함은 여름에 쓰기에는 무겁고 텁텁한 것.

오늘 소개해 드리는 네롤리 포르토피노 포르테는 톰포드 향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여름을 위해 만들어진 향수입니다. 이탈리아 해변의 시원한 바람, 반짝이는 물결, 나뭇잎들을 그려내기 위해 제작됐어요. 한여름밤 단추를 푼 셔츠로 더위를 즐길 줄 아는, 그런 여유로운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향수에요.

푸릇한 녹색 사과 하나를 입 한가득 물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묵직하면서 상큼한 향이 코끝을 은은하게 스칩니다. 사과를 다 삼키기도 전에 다급하게 귤 한 조각을 입으로 밀어 넣어볼까요. 사과의 아삭함과 귤의 과즙이 굉장히 청량감 넘치게 어우러지는 기분 좋은 느낌.

시간이 지나면 물에 젖어 차분해진 풀 내음으로 마무리되는데요. 톡톡 튀는 상큼함과, 은은한 그리니함이 동시에 안기는 이중적인 향입니다. 해변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과일을 깎아 먹는, 그런 행복한 하루를 상상할 수 있을 것.

사랑이 하고 싶다

나무 밑동 뒤에 숨어 울 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나무 백 그루를 심어주는,

숲으로 눈물을 숨겨 주는 그런 사랑

이런 구찌가 100주년을 맞아 출시한 향이 최근에 출시됐는데요. 구찌가 탄생한 1921년의 숫자를 따와서 ‘알케미스트 가든 1921 오 드 퍼퓸(The ahemist’s garden 1921 EDP)’으로 네이밍되었어요. 보틀 또한 구찌 하우스를 상징하는 그린 컬러의 투명한 유리로 제작되었는데, 레터링과 골드 디테일을 가미해 알케미스트 가든의 화려한 모습을 형상화했습니다.

네롤리 향의 풋풋한 초목 향을 처음으로 공유한 뒤, 피렌체 리모네 체드라토의 레몬, 감귤류 과실향을 블렌딩해 산뜻함을 머금은 것이 주목할 점. 거기다 오크모스 향이 은은하게 올라오는데, 자연의 무성한 숲을 연상시키며 성별과 계절을 초월하는 1921년의 세련된 시그니처 노트를 만들어냅니다. 자그마치 1세기 전, 구찌와 함께했던 도시 피렌체에 헌정한다는 마음을 담은 향이라고 소개하는데요.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복합성이 돋보이고, 우아한 농도감이 초목의 향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자자합니다.

초반부터 상큼한 레몬이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합니다만, 향을 볼 땐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하죠. 전반적으로는 굉장히 부드러운 향입니다. 향긋한 꽃들와 그린한 네롤리가 전반부의 중심을 꽉 잡아주는 멋진 광경. 영화로 따지면 계속해서 돌려보고 싶은 오프닝과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당히 고급스러운 향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요. 마치 마법에 걸린 신비로운 숲속에서 풍겨져 올 것만 같은 향입니다. 향이 아주 천천히 휘발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고요한 달의 냄새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촉촉한 대지의 향, 그린한 시트러스가 취향인 분이라면 관심 있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네롤리와 머스크가 만났습니다. 상쾌함과 부드러움, 전혀 안 어울릴 것만 같은 두 노트가 만나 환상적인 케미를 뽐내는데요. 한없이 가볍고 상큼하게 시작하지만 점점 머스크가 올라오며 가득히 채워지는 깔끔한 스토리. 향의 초반과 잔향의 느낌이 전혀 다른, 반전의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사계절 상관없이 언제나 손이 가는 향수이기도 하지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언뜻 느껴본 향이지만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익숙하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깨끗한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