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제 발로 걸어오지 않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더 많이, 더 세심히 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좋아하려고, 계속해서 노력하는 마음’이 없다면 취향은 절대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요.

취향의 알아가는 첫걸음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라지는 카테고리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 그중 하나가 바로 ‘향’이에요. 여태 맡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첫만남에 강렬하게 끌리는 향이 있지요. 코끝에서 아른거리며 나의 마음으로 자리매김할 향들 말이죠. 자신의 향기 취향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이유 없이 끌리는 향수를 하나 사보는 겁니다.

타이밍 좋게도 요즘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네요. 스스로에게 달콤한 체취를 선물하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오늘은 흔하게 볼 수 없는 향수 3가지를 소개해 드려요.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릴 향이 있기를 바라면서.

시그니처 향 ‘테싯(tacit)’으로 유명한 코스메틱 브랜드죠. 저도 이 브랜드의 핸드크림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 이름하여, '이솝(Aesop)’. 호주를 대표하는 뷰티 브랜드입니다. ‘이솝'이라는 단어는 입에서 굴릴수록 동화스럽고 귀엽게 발음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솝의 창립자 '파파티스(Dennis Paphtis)’가 이솝 우화(Aesop’s Fables)를 너무 좋아했던 까닭에 그렇게 네이밍 했다고. 이솝의 제품과 매장 곳곳에 유명 이솝우화의 격언들이 새겨져 있는 이유이죠. 

창립자 '파파티스’는 미용실에 방문했다가 각종 화학물질이 첨가된 기존의 헤어제품에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재료와 최소한의 화학품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때가 1987년이었죠. ‘순수주의자', '미니멀리스트' 등의 별칭을 가진 파파티스는 올곧고 정직한 제품을 을 향한 그의 신념을 브랜드의 철학으로 발전시켰어요. 덕분에 이솝은 한번 향을 맡으면 잊히지 않는 자연주의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르페르소나 피콕페더(peacock feather). 

휴양지에서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마시는 코코넛 주스 한 잔. 달달한 코코넛 향은 여름에 뿌리기엔 무겁다, 누가 그러던가요. 코코넛과 베르가못의 황홀한 어코드는 마치 해변의 축제이 가진 낭만과도 같습니다. 상큼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중독적인 향.

"커다란 공작 깃털로 장식된 이 가면을 쓴 당신은,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변에서 축제를 즐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끝없이 풍겨져 오는 코코넛 향기와 간간이 들려오는 화이트 플라워와 자스민의 웃음소리.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마치 해변에 온 듯한 힐링을 선사할지도.

국내에 ‘니치 향수'라는 개념을 들여놓은 브랜드, '르라보(Le labo)'. 프랑스 출신의 두 창립자 에디 로시(Eddie Roschi)와 파브리스 페노(Fabrice Penot)가 2006년 뉴욕에서 시작했죠. 조향사가 그 자리에서 직접 향수를 블렌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숙성 기간 2주를 지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 그리고 고객의 이름이나 원하는 문구를 향수 보틀에 적어주는 퍼스널 라벨링 서비스로 등장 초기부터 뜨거운 인기를 누렸습니다.

지난 콘텐츠에서 르라보가 추구하는 ‘실험실' 컨셉을 소개해 드렸지요. 이처럼 누군가는 르라보 하면 실험실을 떠올리지만, 저는 ‘시티 익스클루시브(city exclusive)’가 생각납니다. 시티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은 말 그대로 특정 도시에서만 구할 수 있는 향이에요. 각각의 향은 향이 속한 도시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그 도시로 여행을 떠나야만 하죠. 현재까지는 총 14곳의 도시에 모티브를 얻어 조향된 향수가 존재합니다. 

2020년 9월, 한국의 상징성을 닮은 향도 출시되었는데요. 뉴욕,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모스크바와 두바이 등 13개 도시를 거쳐 르 라보가 도착한 곳은 서울이었습니다. 전통과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의 선두에 있는 서울의 스토리를 ‘시트론 28(citron 28)’이라는 향수에 담아냈다고. 시더와 머스크에 베이스를 둔 레몬과 진저, 자스민의 조화는 깊은 전통성 안에 다양성과 개방성을 가진 서울의 미묘한 매력을 표현했다고 해요. 매년 9월에는 '시티 익스클루시브' 향들을 모든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하니. 다음 달에 여러분의 발걸음이 향할 곳은 사실상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