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올을 입는다.’ ‘악마는 샤넬을 입는다’가 아닙니다. 왜 악마는 프라다를 입을 수밖에 없을까요. 영화에 등장하는 악명 높은 편집장, ‘미란다’는 일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철두철미하게 일을 진행해야 하며, 목표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시 직원들의 해고도 서슴없이 행하는 사람이에요.

브랜드 ‘프라다(PRADA)’는 영화 속 '악마'로 그려지는 편집장의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합니다. 프라다가 단순히 명품을 넘어 개인의 ‘욕망과 성공의 문화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품고 있기 때문인데요. 프라다의 이미지가 이렇게 완성된 비결은 프라다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삶 속에 있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치인이자, 평등주의, 그리고 무언극 배우였어요.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움직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죠. 어쩌면 독하디 독한 마음,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는 듯 은근한 매력이 바로 이 프라다의 진정한 색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이유죠.

프라다(PRADA). 다들 아는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죠. 창립자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프라다를 이어 받아 포코노 나일론(Pocono Nylon) 과 같은 혁신적인 소재를 사용해 새로운 스타일의 패션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습니다.

프라다(PRADA). 읽어도, 써도 왠지 모를 고급 미를 품고 있는 이 브랜드는 1913년, 이탈리아에서 패션을 전공한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에 의해서 처음 탄생했습니다. 그는 동생인 마티노 프라다(Matino prada)와 함께 밀라노에 가죽제품 전문 매장을 차리는데요. 당시 가게의 이름은 프라텔라 프라다(Fratelli Prada, '프라다 형제'라는 의미)였어요.

두 형제는 직접 만든 가죽제품과 영국에서 수입한 핸드백, 바다코끼리 가죽으로 만든 트렁크 가방을 판매하였는데요. 뛰어난 품질로 단숨에 이탈리아에서 이름을 알립니다. 1919년에는 왕실에 공식적으로 납품하는 업체로 선정되고, 왕실의 문양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될 정도였지요. 프라다의 역삼각형 로고 안에 작게 이탈리아 왕실 문양이 새겨져 있는 이유도 이겁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경기가 침체되면서 매장 운영이 힘들어지게 돼요. 인지도가 떨어지면서 사업이 난항에 처하게 된 거죠. 마리오 프라다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가업을 승계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딸들의  사회생활에 결사반대를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여자가 사업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요.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리오 프라다의 유일한 '아들'은 가업을 잇는 걸 난색을 표할 정도로 싫어했어요. 어쩔 수 없었죠. 딸인 루이자 프라다(Luisa Prada)에게 가업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이자 프라다는, 지금 프라다의 수장인 ‘미우치아 프라다'의 어머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루이자 프라다 이후에 프라다를 이어갈 사람이 없었던 건데요.

루이자 프라다의 딸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당시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공산당이면서, 여성 인권 운동에 많이 참여하던 그런 정치인이요. 그러나 어려서부터 옷을 사랑했던 미우치아는 공산당원임에도 불구하고 고가인 이브 생 로랑이나 앙드레 쿠레주의 의상을 착용하고 다녀 이목을 끌었습니다. 미우치아의 이런 아이러니한 모습은 여성 공산주의자 행진 때 기자들에게 포착되고, 신문을 통해 이탈리아 전역에 그 모습이 공개되어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죠.

그래도 미우치아 프라다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독하게 임했지요. 패션을 사랑했던 미우치아 프라다는, 1975년에 드디어 프라다 가업에 합류합니다. 이내 "기왕 맡은 거 잘해보자." 굳은 결의를 다지게 되죠.

가업을 승계 받고 처음으로 한 생각은, ‘프라다를 현대적인 브랜드로 바꿔보자.’였는데요. 문제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패션 디자인을 전혀 배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머리 속에 생각한 디자인을 그려 디자인 팀에 전달하고 그와 어울리는 소재와 재단법을 찾아 유럽을 돌며 제품을 만들었어요.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싶은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해요.

"나는 그저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1977년 어느 날, 미우치아 프라다는 무역박람회장에 방문하는데요. 그녀는 거기서 프라다의 가방 디자인을 복제한 업체의 사장을 만났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녀는 사장과 담판을 지으려 했죠. 하지만 오히려 그 청년 실업가에게 설득당해 동업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청년 사업가가 바로 ‘파트리치오 베르텔리(Patrizio Bertelli)'라는 가죽 재단 전문가였습니다. 사업 파트너이자 부부 관계로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그렇게 1980년, 낙하산이나 텐트용으로 사용되던 방수 천인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하여 세상에 걸작을 내놓게 되죠. 심플한 디자인의 고급스러운 토트백을요.

철망 무늬로 찍어낸 듯한 사피아노 가죽백, 부드러운 나파 가죽백 등 프라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키워드들이 참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알아야 할 프라다의 시그니처가 있다면 바로 ‘나일론’입니다. 맞아요. 부모님들이 등산할 때 입는 옷, 그 바스락거리는 소재 말이죠.

1970년대, 당시 대부분의 가방은 가죽 소재를 사용해 만드는 것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패션을 전공하지 않은 미우치아 프라다는 기존의 고정 관념을 깨는 데 일가견이 있었어요. 그녀는 군용 물품 공장에서 낙하산이나 텐트용으로 사용되던 방수 천의 일종인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하여 심플한 디자인의 가방을 완성했습니다. 패션전공자라면 절대 쓰지 않던 검은색 나일론 소재로 만든, 고급스럽고 심플한 제품들. 프라다 매장에 전시되자 사람들은 유행처럼 몰리기 시작했죠.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 소재를 활용하여 1979년에 백팩과 토트백 세트를 출시했는데, 이들 제품은 전 세계 백화점과 부티크(Boutique)에서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디자인이 단순하고 고급스러우면서도,  가볍고 실용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정장이나 캐주얼에도 잘 어울리죠.

프라다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들은 ‘나쁜 취향’, ‘못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는데요. 그 이유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프라다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종종 미의 기준에 어긋나는 새로운 멋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스커트에 발목 길이의 흰 양말과 하이힐을 매치하거나, 털 모자와 칵테일 드레스의 조합, 그리고 작업복에 티아라(왕관)을 씌운 믹스매치 스타일 등 이질적인 요소들을 과감하게 붙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프라다의 여성복 컬렉션에는 밀리터리적인 요소가 꾸준히 등장하는데요. 이처럼 프라다의 디자인은 기존의 아름다운 여성복의 형태와는 정반대였어요. 그녀는 아름답게 보이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서의 여성성을 거부하며, 패션을 반항적 상징물로 해석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펑크(Punk)한 브랜드죠.

“프라다가 인기있는 이유는 소리치기보다는 조용히 속삭이기 때문이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직접적인 노출이나 지나친 장식을 통해 표현하는 유혹이 아닙니다. 은근한 지적인 아름다움이죠. 프라다가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스타킹 대신 양말을 선호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에요. 이 모든 것들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미우치아의 성장 배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다는 매 시즌 조용한 반항미를 드러내는 제품을 개발함은 물론, 새로운 콘셉트와 신선한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프라다 가문은 온전히 프라다 가문을 통한 가족 운영 형태로 브랜드를 이어가기로 유명하죠. 인수합병 활발한 요즘 같은 시대에도 말이에요. 그런데 2021년, 전례 없던 사건이 프라다에게 일어났습니다. 독고다이로 브랜드를 운영하던 프라다에서, 무려 외부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한 건데요. 그의 이름은 ‘라프 시몬스(Raf Simons)’. 유스하고 경쾌한 색깔을 가진 그를 프라다가 불러들입니다. 라프 시몬스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함께 프라다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자리에 오르게 돼요.

라프 시몬스의 언어로 해석된 프라다 2021 FW 컬렉션. ‘힉’소리날 정도로 예뻤습니다. 프라다의 미니멀리즘에 라프 시몬스의 위트를 더한 모든 룩들. 볼륨감 있게 몸을 뒤덮는 오버사이즈 실루엣, 낮은 채도의 부드러운 컬러, 매끈한 광택을 복고적으로 더한 나파 가죽 소재가 빛을 발했는데요. 라프 시몬스의 아이덴티티라고 말하기에도, 완전한 프라다의 색깔이라고 명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모든 요소에서 둘의 취향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뤘어요. 

라프 시몬스는 프라다의 트라이앵글 엠블럼과 나일론 소재를 적극 활용하여 쿠션, 패치워크, 스티치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 냈습니다. 오랜 기간 다소 클래식하게만 활용되던 프라다의 로고와 나일론 소재를 굉장히 젊고 재미있게 풀어낸 건데요. 자세히 보면 트라이앵글 실루엣은 유지하면서 여러 다채로운 아이디어로 표현한 것이 재밌죠. 성공한 30, 40대 사업가들만 입어야 할 것 같은 프라다가, 이제는 20대 젊은 층까지 포용하게 되었습니다. 패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환호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다고요.

미우치아 프라다, 그리고 라프 시몬스와 함께한 올해 FW 컬렉션. 이번 컬렉션도 너무나 예쁜 나머지, 현재 제 카카오톡 프로필의 배경화면으로 지정할 정도였습니다. 매력적인 악마에 홀려버린 느낌이에요.

시스루를 재해석한 것이 이번 시즌의 디자인 포인트. 화이트 탱크탑과 섬세하게 수놓은 시스루 스커트의 조합이 강렬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죽 보머와 에비에이터 재킷, 풍부한 인타르시아 니트 등이 어우러졌지요. 몇 가지 아이코닉한 룩들이 더 있었는데요. 신선한 애티튜드와 새로운 비율의 드레스코드들, 아래에서 봐주시길.

"난 기본적으로 나쁘고 틀린 것을 가지고 작업한다."

이제쯤 아실 겁니다. 악마가 프라다를 입는 이유. 프라다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사람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옷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자신감, 그리고 지독히도 독한 근성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옷이 바로 프라다에요. 영화 제작자는 알았던 거죠. 영화 속에 자연스레 프라다를 녹여내면, 그 철학까지 그대로 투영되지 않겠나. 뭐 이런 생각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대에 프라다라는 브랜드가 지니는 가치는 지대할 겁니다.  누군가에겐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 은근히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