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될수록 잘 먹고 잘 놀고
그냥 천진난만하게 지내고 싶어.
사랑에 빠지고 싶더라, 보헤미안과.

하늘하늘한 소재, 에스닉 프린트, 길게 늘어뜨린 부스스한 머리. 영화 맘마미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보헤미안(Bohemian)에 취해있었으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만으로도 자유분방함이 느껴지는 보헤미안은 바람이 속삭이는 가을에 가장 아름다울 스타일입니다. 때로운 고민 없이 아이처럼 살고 싶은, 혹은 선우정아의 노래 '도망가자'를 즐겨듣는 여행자들께 바칩니다. 보헤미안 스타일과, 그를 성장시키는 브랜드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을.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

유랑 민족. ‘집시’라고 하지요. 집시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은 아직까지도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는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살았던 15세기 유랑 민족을 보통 ‘집시’라고 칭합니다. 자유를 찾아 유랑하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에요. 집시는 히말라야산맥에 이어지는 산이나 평야에서 살다가 세계 각지로 떠돌아다녔습니다.

프랑스에서 집시는 ‘보헤미안’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유랑을 했기 때문에 의식주에 있어서도 자유를 추구하고,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자신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켜 나갔어요. 그래서 ‘보헤미안’은 하나의 고유명사로 발전하게 되었는데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점차 변화된 것이지요. 지금은 교양 없는 속물근성의 대명사인 ‘필리스틴(Philistine)’에 대조되는 말로 자리잡았습니다.

‘화려한 프린트’, ‘하늘하늘한 소재’, ’길게 늘어뜨린 부스스한 머리’, 그리고 ‘에스닉한 액세서리’.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는 보헤미안의 패션 키워드라고 할 수 있지요. 전체적으로 헐렁하고 루즈한 옷을 겹쳐 입는 레이어드, 페이즐리나 기하학무늬를 활용한 프린트 등 이국적인 무드가 특징이죠.

보헤미안 패션은 여러 옷을 겹쳐있는 레이어드가 발달됐는데요. 유랑민답게 옷 가짓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유랑하다 보니 씻을 기회가 적으니까요.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옷들을 나름대로 멋스럽게 겹쳐 입기 시작했는데, 그런 경계 없는 레이어드가 그들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하나의 '매력'이 되었습니다.

주렁주렁 늘어뜨린 패션 아이템들. 과한 액세서리 또한 보헤미안 특유의 자유분방한 느낌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데요. 원석 주얼리를 활용하고, 길게 떨어지는 드롭형 귀걸이, 발끝에서 춤을 추는 펑퍼짐한 원피스가 원조 ‘보헤미안 스타일’입니다. 사실 스카프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뽕' 뽑을 수 있어요. 스카프를 목에 한 두 번 감아 자연스럽게 연출하거나, 머리 부분을 감싸 반다나 스타일로 입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 정말이지 사막 한가운데를 걸어도 멋스러울 겁니다.

무심한듯 툭 걸쳐 입은 헐렁한 리넨 블라우스와 각선미를 돋보이게 해주는 뭉툭한 굽의 ‘디커부츠’. 특히 프랑스 거리에서 늘상 보이는 이 ‘디커 부츠’는 사실 고유명사가 아니라 한 브랜드의 상품명인데요. 브랜드 '이자벨마랑(Isabel marant)'은 디커부츠를 세상에 내놓으며  ‘시크한 프렌치 보헤미안’ 스타일을 개척해 냈습니다.

이자벨 마랑은 1994년 프랑스 디자이너, ‘이자벨 마랑’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선보인 브랜드인데요. 이자벨 마랑은 1967년, 프랑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에스닉 스타일을 눈에 담았고, 특이한 패션을 즐겨 입던 가정교사를 동경하며 처음 패션에 눈을 떴다고 하지요. 그녀는 15세에 오래된 군복자켓을 보헤미안 느낌으로 리폼하면서 첫 바느질에 성공합니다. 이후로 스커트나 드레스에 비해 움직임이 자유로운 보헤미안 스타일에 푹 빠졌다고 해요. 패션의 매력에 사로잡힌 그녀는, 파리의 의상학교 스튜디오 베르소에 입학하게 됩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자벨 마랑은 요지야마모토, 마틴싯봉, 끌로에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실력을 쌓았어요. 본격적인 사업은 1989년, 의상이 아닌 주얼리로 시작했지만 점점 사세를 확장하여, 1990년 저지 앤 니트웨어(jersey and knitwear) 브랜드 ‘트웬(TWEN)’를 거쳐 1994년 파리의 마레지구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브랜드, '이자벨 마랑'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첫 컬렉션, 1995 SS을 시작으로 고공행진 했어요. 1997년 프랑스 최고 디자이너 상, 다음 해에는 여성 패션 부문 금상을 수상할 정도였지요. 그와 동시에 바스티유 지역에 첫 가게를 오픈하고, 1999년에는 ‘이자벨마랑’보다 더 캐주얼하고 가격이 낮은 세컨드 라인 ‘이자벨 마랑 에뚜왈(ISABEL MARANT ETOILE)’ 라인을 론칭하면서 꾸준히 영역을 확장시켜나가고 있습니다.

"프렌치 시크. 이 단어가 제 스타일을 진짜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웨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디자인. 전 세계에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브랜드 이자벨 마랑은 그들의 스타일을 '프렌치 시크'라고 명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옷'이란 입었을 때 지극히 ‘나답게’ 느껴져야 하며, 편하고 자유로워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이자벨 마랑을 옷장에 아카이빙 하는 사람은.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옷을 캐주얼하고도 손쉽게 입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에스닉한 소재로 우아한 여성미. 에스닉이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 등의 민족의상처럼 독특한 색상과 기하학무늬,자수 같은 수공예를 포인트로 넣은 옷을 말하는데요. 이자벨 마랑은 아프리카 민족 고유의 패턴과 인도의 캐시미어, 실크, 자카드 등을 자유자재로 믹스 매치하여, 기존 '보헤미안'을 현대적으로 시크하게 풀어냅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옷. 그야말로 매혹적인 보헤미안 프렌치 무드죠.

뉴욕시의 록 밴드 '블론드 레드헤드'가 2022 FW 이자벨 마랑에 등장했습니다. ‘블론드 레드헤드’의 몽환적인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모델들은 줄기차게 앞으로 걸어 나왔는데요. 백스테이지에서 이자벨 마랑은 자신이 그녀의 빅 팬이라며,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영광을 표했다고.

"그들의 오래된 노래가 있는데, 제게 정말 영감을 주었습니다."

곡 이름은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Tin Roof)'였습니다. 그들의 노래처럼 이번 FW 컬렉션은아주 분명하고, 아주 포근하고, 순진하고 섹시했어요. 편안한 베이지 컬러의 워크웨어로 시작하여 자유롭고도 스타일리시한 파리지앵의 전형으로서 아무렇게나 걸쳐 입어도 대충 멋이 나는 특유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Y2K 패션 트렌드를 반영한 남성적인 오버사이즈 코트나 재킷, 미니 원피스, 올 데님 웨어 룩들도 볼 수 있었죠. 매우 신중한 동시에 매우 강력한 브랜드임을 입증했어요.

옷장에 이자벨 마랑 옷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대충 아무렇게나 꺼내 입어도 이렇게 멋스럽지 않을까요,
페르시아 카펫에서 영감을 받은 태피스트리 재킷 하나만으로 그냥 끝입니다. 이너로 심플한 탑을 입든, 하의로 데님이나 스웻팬츠를 입든 구원투수죠. 개인적으로 보헤미안이 가진 매력을 한 번에 보여주는 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여행을 사랑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분들

- 에스닉한 프린팅을 사랑하는 분들

- 그 어떠한 걱정없이 천진난만하게 살고 싶은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