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토트넘의 시장, 캠던의 주택가,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 실내 인공 암벽 등반 무대. 이 브랜드의 컬렉션 장소는 언제나 특별합니다. 보기 좋은 패션도, 유행을 따르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기 때문이죠. 종잡을 수 없기에, 관습을 따르지 않기에 더욱이 매력적인 브랜드. 마틴 로즈(Martine Rose)입니다. 

국내에도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어서 아마 익숙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오늘 EGOZINE에서는 2017년부터 3년 영속 영국 패션 협회 선정,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후보에 오른 마틴 로즈를 간단하게 다뤄보았습니다. 런던의 90년대 서브컬처, 그리고 건설업자와 배달원 같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 마틴 로즈의 이야기는 뻔하디 뻔한 양산형 패션이 늘어나고 있는 오늘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선사할 겁니다.

2007년에 설립된 영국의 맨즈웨어 브랜드, 마틴 로즈(Martin Rose). 디자이너 마틴 로즈가 이끌고 있는 패션 레이블입니다. 레이브, 힙합, 펑크 등 1990년대 서브컬처를 떠올리게 하는 자유로운 양감과 대담한 색깔을 쓴 디자인이 특징. 현재는 발렌시아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활동과 나이키와의 콜라보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성장하였습니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회계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마틴 로즈. 부모님보단 재단사 일을 하셨던 할아버지와 저녁마다 외출하는 사촌 언니, 오빠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컸다고 합니다. 마틴 로즈의 유년 시절엔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바로 문화였으며, 전부고, 영감이었어요. 

특히 사촌들과 함께 런던 음악을 즐기면서 자신에게 숨겨진 패션 열정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당시 ‘레이브(Rave)’라고 불리는 뮤직 댄스파티에 가기 위해 가족들이 치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패션 세계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고 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장 폴 고티에, 보이 런던과 캐서린 햄닛 등. 사촌들이 걸친 모든 반항적인 멋의 패션 아이템은 마틴 로즈에겐 세상에서 가장 멋스러운 존재로 비쳤죠.

“앉아서 보그를 읽거나 캣워크 쇼나 보며 패션에 입문한 게 아닙니다.”

마틴 로즈는 2002년에 런던의 미들섹스 대학을 졸업하고, 2007년에는 조촐하게 셔츠 열 장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곧 영국 신인 디자이너들의 플랫폼인 패션 이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영국 패션협회 뉴젠 어워드를 수상하면서 신흥 디자이너로 떠오르게 되죠. 그러나 2012, 자신의 이름을 딴 대망의 첫 컬렉션을 선보였으나 워낙 색깔이 강한 탓에 패션 시장의 반응이 바로 따라오지 못했어요. 마틴 로즈는 34살까지 술집에서 일하며 힘겨운 일상을 이어갔죠.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것은, 당시 패션씬에서 가장 핫했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부름을 받고 난 뒤였습니다.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뎀나는 마틴 로즈의 오랜 팬이었어요. 그는 마틴 로즈에게 발렌시아가의 맨즈웨어 컨설팅을 제안해요. 자기 패션에만 몰두하던 디자이너가, 단번에 명망 있는 프랑스 정통 쿠튀르 하우스에 입문하는 일. 그 일이 신진 디자이너였던 마틴 로즈에게 일어납니다. 그녀는 2016년부터 약 3년간 뎀나 바잘리아의 곁에서 남성복을 디자인해요. 마틴 로즈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죠.

“발렌시아가는 저를 완전히 변화시켰어요. 엄청난 자신감을 주었죠. 닿을 수 없는 곳이라 생각했거든요.”

대중에게 인정받기까지 장장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인내심이 수반된 그 시간들을 기탄 없이, 모조리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현재의 마틴 로즈입니다. 데뷔 초부터 사랑했던 아이템, ‘와이드 팬츠’가 한입 모아 말하는 트렌드의 전선에 올랐을 때는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과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오너 역할을 곧잘 해내는 멋진 디자이너로 성장하였는데요. 여러모로 배울게 많은 인물입니다. 능숙하고 크리에이티브한 패션 스킬뿐만 아니라, 하루빨리 인정받는 것에 급급하기 보다 본인이 정녕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게 성공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가짐 또한.

“단지 모든 사람들이 즐기고 즐기기를 원했을 뿐.”

뒤틀리고 주름진 붓폴 저지, 울트라 숄더 재킷, 꼬이고 왜곡된 테일러드 블레이저, 스퀘어 토가 포인트인 로퍼 뮬 등. 이처럼 마틴 로즈 하면 연상되는 아이템은 많지만, 역시 이들의 정수는 ‘주체할 수 없이 펄럭이는 거대한 와이드 팬츠’가 아닐까요. 마틴 로즈의 와이드 팬츠는 그들의 디자인 철학을 그대로 대변합니다. 와이드 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극단적인 면이 있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우리가 흔히 '일반적으로 입기에 알맞은 옷'이라고 생각하는 범주를 넓혀주는 느낌이라 좋았다는 거죠. 

“단조로움을 한번 꼬아 키치한 영역으로 끌어들이다.”

영감의 원천은 클럽이나 커뮤니티, 음악 혹은 서브컬처 그리고 스포츠 웨어. 이렇게 폭넓은 범주에서 영감을 찾고 포용하는 것은 런던 패션의 정통적인 스타일과 거리가 멀어서 더욱 특별합니다. ‘끝없는 호기심’에서 자신의 창의성이 나온다고 말한 마틴 로즈는, 늘 서브컬처에 대한 의류를 새로운 무언가로 비꼬아 표현합니다. 즉, 본래의 형태는 비틀어진 채로, 새로이 창조된 ‘재미있는’ 옷을 제작하죠. 그래서 마틴 로즈의 옷을 보면 기존의 패션 문법을 처참히 부숴버리는, 대담하고 창의적인 실루엣과 아슬아슬한 불균형이 돋보이는 디자인이 돋보여요.

마틴 로즈의 뚜렷한 정체성은 타미진스, 나파피리 등 타 브랜드와의 콜라보에서도 나타납니다.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나이키와의 협업인데요. 나이키는 마틴 로즈를 만나 스포츠 브랜드 제품을 한층 더 감각적인 무드로 선보일 수 있게 되었고, 마틴 로즈 또한 이전보다 대중적인 코드를 한껏 담아낼 수 있었죠.

이번 2023 봄 런던 패션위크에서 공개된, 마틴 로즈와 나이키의 협업 ‘샥스 MR4’가 최근 베일을 벗었는데요. 날렵한 실루엣과 과감한 솔 유닛을 특징. 여성은 축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1971년 축구 경기를 위해 멕시코시티로 떠난 14명의 영국 여성들을 기념하는 컬렉션에 녹여 냈다고 합니다. 패션과 스포츠, 편협한 생각의 경계를 무너뜨린 좋은 예.

런던 패션위크가 시작되기도 전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마틴 로즈의 이번 시즌 컬렉션. 1980년대 레이브 컬처에 주목한 아이디어로 반짝였습니다. 마틴 로즈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탈리아의 코스믹 씬, 유럽에서 폭발하고 전 세계 댄스 플로어에 영향을 미친 이탈로 하우스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고, 이는 세트에 반영됐다”라고 전했는데요. 

‘90년대 하우스 음악이 흐르는 클럽 거리’를 담아낸 디자인이 매력적인 시즌이었습니다. 오버사이즈 재킷에 가는 허리를 강조한 모순적인 디테일, 그래피티 셔츠와 부츠컷의 로우 라이즈 데님, 흩날리는 머리칼을 연상시키는 프린지와 강렬한 눈 화장, 그리고 펑키하게 부푼 머리는 마틴 로즈. 마틴 로즈 식 젊은 영국의 거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