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쏟아지는 컬렉션의 홍수 속에서 2023년 한정 가장 눈길이 갔던, 독보적인 패션 트렌드가 있었으니. 글래머러스 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어릴 적부터 우리가 무수히 그려왔던 하트(heart-shaped)가 바로 그것. 그렇습니다. 올해 패션위크는 사랑이 넘쳤어요. 하트가 주야장천 등장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건 꽃도, 별도, 그 어떤 것도 아닌 하트(heart)입니다!”

팬데믹 이전의 즐거움을 되찾으려는 듯. 뻔하디 뻔했던 하트 모양은 어느 때보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모습으로 변모한 채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EGOZINE에서는 2023 SS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하트(heart motives)’를 다뤄보려고 해요. 옷과 패션을 사랑한다면 요깃거리 마냥 가볍게 즐겨주시길.

아크네 스튜디오의 이번 2023 SS 쇼장은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아크네 스튜디오의 디자이너 조니 요한슨은 20년 전에 방문했던 결혼식을 떠올렸는데요. 그때 입었던 자신의 복장이 후회스러운 마음이라고 전하면서 이번 쇼의 주제를 ‘결혼(wedding)’으로 잡았다고 하죠.

결혼식 날의 게스트를 떠올려볼까요. 대개는 옷장에 있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가거나 새로운 옷을 사는 등, 일상에서 벗어난 패션을 즐기죠. 조니 요한슨은 이런 일시적인 즐거움에 주목했습니다. 결혼식 동안 누릴 수 있는 잠깐의 즐거움, 치장, 키치함을 패션으로 풀어냈어요.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하트, 리본, 그리고 레이스였죠. 앞면의 플리츠 하트 디테일이 들어간 강렬한 비대칭 레드 드레이핑 드레스, 그리고 하트 아플리케와 플라워 패턴이 가미된 투명한 드레스가 그 예. 

브랜드 모스키노(Moschino)를 새로운 세대에 친근하게 소개했다는 패션계의 평. 그 주인공은 바로 디자이너 ‘제레미 스콧(Jeremy Scott)’입니다. 2013년 10월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처음 임명되었으며 이후 브랜드에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데 큰 역할을 했지요. 모스키노를 장난스럽고 유쾌한 이미지로 끌어올린 그는, 이제 모스키노를 떠납니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쇼가 바로 올해 2023 SS 쇼에요.

“모스키노와 함께 한 지난 10년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리는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남긴 헤리티지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모스키노를 향한 제레미 스콧의 무한한 애정만큼이나 사랑스러운 룩들이 줄기차게 등장했는데요. 형형색색의 창의적인 룩들에 보는 눈이 잔뜩 즐거울 지경이었습니다. 러블리한 하트 디테일이 가미된 원피스들로 시작해 고급스러운 리조트룩이 연이어 등장했고 쇼 후반부와 피날레를 장식한 비치 튜브 장식을 얹은 피스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어요. 하트 모양이 귀걸이, 브로치, 라펠, 슈즈 등에 여과 없이 활용된 것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

평소 환경에 관심을 보이는 브랜드죠. EGOZINE에서 몇번 언급한 적 있는 브랜드, 보터(Botter)입니다. 루시미 보터(Rushemy Botter)와 리시 헤레브르(Lisi Herrebrugh) 듀오가 이끌고 있는 브랜드에요. 

이번 2023 SS 쇼의 주제는 다름 아닌 ‘The Plastic Sea’. 바다에 과도하게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대한 항의를 패션으로 과감히 드러냈는데요. 폐플라스틱이 불러일으키는 해양오염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콘돔에 물을 채운 글러브를 착용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백스테이지 냉동고에서 얼린 가방으로 눈길을 끌는 등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였죠.

그 와중에도 하트가 등장했는데요. 하트 형태로 중앙에 컷아웃 된 수트는 다이버가 공중으로 올라와 어깨에서 스쿠버 장비를 벗을 때의 모습을 해석한 것이라고 합니다. 참신한 발상, 세련된 실루엣, 그리고 보터의 시그니처 컬러인 캐리비안 블루(Caribbean blue)가 만나니 이보다 더 청량하게 황홀할 수 없네요.

비베타(Vivetta)는 처음 들어보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깔끔한 실루엣에 초현실적 로맨티시즘을 가미하며, 동화적인 환상을 불어넣기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백조, 꽃자수, 손, 고양이, 페이스 디테일 등 독특하고 키치한 소재를 활용하여 묘한 고급스러움을 표현해요. 그야말로 자기만의 색이 굉장히 뚜렷한 브랜드죠.

컬렉션을 보면 감이 오실 텐데요. 마치 ‘I heart you!’라고 외치는 듯 하트가 넘쳐났던 컬렉션이었습니다. 작은 컷아웃 하트 디테일이 있는 티셔츠에 하트 모양의 귀여운 핫팬츠를 매치한 룩, 파이톤 패턴 위로 하트 프린트가 가미된 원피스 룩, 배꼽 부분에 하트 모양으로 펀칭된 드레스 룩 등. 하트를 재료 삼아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아이디어 집약체처럼 느껴집니다. 평소에 하트 모양을 좋아하신다면 이번 비베타의 2023 SS 쇼를 꼭 한번 시간 내어 찾아봐도 좋겠네요.

굳이 분위기를 잡거나 파티에 참여하여 대놓고 섹시함을 뽐내는 것은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몸 위로 흐르는 시스루라도 마치 단단한 심장으로 느껴지는 것. ‘강인한 섹시함’, ‘외유내강’이라는 키워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브랜드가 바로 이 넨시 도자카(Nensi Dojaka)에요. 지난 EGOZINE에서 소개해 드린 바 있지요. 넨시 도자카는 란제리에서 영감을 받은 여성복 신생 브랜드로,  정교한 에로티시즘을 발산하는 란제리 기반의 룩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인기가 상당하죠.

몸에 꼭 맞는 미니멀한 실루엣의 드레스들이지만, 동시에 바스트를 가로지르는 스트랩과 컷아웃 디테일을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더하는 것이 이 브랜드의 디자인 특징. 보통은 유약한 '메쉬 소재'와 ‘리본(스트랩)'을 활용하여 선과 굴곡이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요. 이번 2023 SS 시즌에는 리본 대신, ‘하트’를 선택했습니다. 균형 잡히면서 달콤한 하트 디테일 덕분에 특별한 액세서리들이 없어도 임팩트 있는 모습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투박한 블레이저에 하트 시스루를 매치한 룩이 마음에 드는데요. '힘과 취약성', '강인함과 연약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느낌이 재밌습니다.

과거 변호사였던 밧셰바 헤이(batsheva hay)는 그녀와 본인의 딸을 위한 드레스를 만드는 것을 취미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녀가 만든 옷은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2016년 브랜드를 런칭하게 되죠. 밧셰바의 옷들은 보통 프레리 스타일부터 1970년대의 보헤미안 드레스를 아우르며, 클래식 아메리칸 디자인의 매력이 살짝 담겨있는 것이 포인트인데요. 우아한 실루엣, 과장된 프릴 디테일, 플로럴 패턴과 레오파드 프린트을 자주 활용하는 것이 특징.

밧셰바의 2023 SS 컬렉션은 70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빈티지드레스 브랜드, ‘거니삭(Gunne Sax)’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80년대에서 영감을 받은 실루엣은 하트 프린트와 패턴, 거대한 프릴, 반짝이는 PVC와 짝을 이루어 환상적인 컬렉션으로 완성됐어요. 어릴 적 유행했던 베이비돌 의상처럼 사랑스럽고 귀엽습니다.

하트가 다시금 런웨이의 주역으로 거듭난 올해. 하트 귀걸이, 하트 그래픽 티셔츠, 뭐든 좋아요. 하트가 평소에 너무 유치하게 느껴져서 도전을 못했다면, 이번 트렌드 흐름에 살짝 탑승한 채 마음껏 즐겨봐도 좋겠네요. 오늘 EGOZINE이 이고진 구독자 분들의 스타일링 아이디어에 힌트가 되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