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잘 만나면 그야말로 평생의 단짝 친구가 되어주는 아이템. 옷장 속에 걸어놓기만 해도 든든한,‘셔츠(shirts)’입니다. 맞아요. 드디어 셔츠의 계절이 왔습니다. 하늘하늘한 소재의 셔츠가 빛을 발하는 어느 봄의 일상. 셔츠 끝단에서 일렁이는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기죠!

그중에서도 어떻게 스타일링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건 역시 오버사이즈 셔츠(oversized shirts)입니다. 패션에 일가견 있는 분이시라면 낭낭한 품의 다채로운 셔츠들이 이미 옷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텐데요. 스타일에 따라 무궁무진한 변신 잠재력을 가진 이 오버사이즈 셔츠를 EGOZINE 팀원들은 어떤 방식으로 매치했을까요.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이 시점에 짚고 넘어가야 하는 매력적인 주제죠. 예쁜 셔츠, 더 예쁘게 입는 알찬 팁을 얻어가 보시길. 

비가 많이 옵니다. 집에만 있기엔 답답해서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어요. 커다란 셔츠 하나 걸치고 나온 탓일까요, 우산을 잡은 긴 소매 끝단이 빗물에 촉촉하게 젖어들어가고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뜬금없이 이 셔츠를 입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품이 넓고 컬러가 밝은 탓에 비 오는 날 운전자의 눈에 잘 들어오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베이직한 디자인에 슬릿 디테일로 은은한 포인트를 준 셔츠. 날이 좋아서, 오늘처럼 날이 좋지 않아서, 바람이 불어서, 해가 드리워서, 그렇게 매일 손이 가는 무난한 셔츠입니다. 

음, 브랜드는 평범하진 않네요. 여러분도 아시는 그 '르메르(Lemaire)'에요. 가장 편안한 형태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옷을 디자인할 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매력적인 브랜드죠. 과연, 아래로 점차 넓어지는 이 실루엣을 보세요. 몸과 옷 사이에 사적인 거리를 넉넉하게 허락한 모습입니다. 분명 셔츠의 실루엣이 우리의 몸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유도했을 겁니다. 

물론 셔츠 홀로 입으란 법은 없습니다. 패션은 더하기에서 출발하곤 합니다. 이것저것 더하고, 과하다 싶으면 덜어내는 방식이 좋지요. 셔츠 위에 원피스를 입어본다면 어떨까? 그건 취향의 영역일 뿐 정해져 있는 정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포멀한 자리에서 입도록 탄생한 셔츠지만, 보다시피 볼캡과 카고팬츠를 함께 입어도 예쁘기만 한 것처럼요.

의도한 건 원피스 안에 셔츠를 매치하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 반대로 셔츠를 꺼내 입어도 좋아요. 취향 따라 즐기기 나름입니다. 페미닌한 무드의 원피스와 반대로 오버한 셔츠와 팬츠를 활용하여 믹스매치하는 이야기. 여기에 화사한 톤의 볼캡과 샌들을 더하여 계절감을 살린 데일리한 룩입니다. 즐겨 보시길.

‘오라리(Auralee)’의 옷은 실제로 보면 정말이지 ‘힉’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속칭 어나더레벨(another level)이에요. 좋은 소재가 주는 마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듯, 색감과 퀄리티가 남다릅니다. 왜냐하면 오라리의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는 독특한 소재를 활용하여 실루엣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어떤 소재로 제작할 것인가?” 디자인을 할 땐 언제나 이 질문으로 시작할 만큼이요.

원단을 직접 개발하는 만큼, 역시나 셔츠도 특별합니다. 시그니처 원단인 고밀도의 이집트산 면 소재로 제작된, 푸른 색감의 오버사이즈 셔츠. 몸을 타고 흐르는 유려한 실루엣,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머금은 편안한 푸른색을 가졌어요. 부담스럽지 않은 익숙한 컬러에, 정교한 테일러링, 그리고 움직임을 자유롭게 하는 느슨한 실루엣이 균형 있게 믹스되어 있는 모습. 만져보면 확실히 다릅니다. 셔츠 좋아하는 일잘러들이 오라리의 셔츠에 집착하는 덴 이유가 있지요. 멀리서 봐도 딱, 티가 나거든요. 

잘 만든 셔츠 하나가 이렇게나 유용합니다. 특히 색감 예쁜 셔츠 하나면, 어떤 아이템과 매치해도 근사해 지거든요. 라펠에 힘을 준 빳빳한 소재의 버튼 셔츠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진짜 패셔니스타가 된 뿌듯함까지 느껴진다고 할까요.

셔츠지만 역시 스트릿한 아이템과도 잘 어울립니다. 후디 같은 '스포티'한 옷과 함께 입는 거죠. 흔한 반팔티가 아닌 넉넉한 치수의 후디를 골라주고, 계절감을 고려한 이지한 슈즈까지 신어봐 주는 겁니다. 조금 더 믹스매치를 즐기고 싶다면, 약간의 소년미를 더해줄 패턴 헌팅캡까지. 개성 강한 아이템들이 모였지만 오히려 셔츠가 빛을 발하는 마법. 물론 예쁜 푸른색이라서요.

출근길엔 사람들 구경할 맛 나죠. 깔끔한 정장부터 편안한 사복 차림까지. 그들의 패션을 보며 어떤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일지 가만히 유추해 보곤 합니다.

어느 날은 정장구두를 덮는 긴 브라운 슬랙스에 연분홍색 셔츠를 입은 여성을 마주했는데요. 넉넉한 품으로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특유의 단정한 분위기에 자꾸만 눈이 가더군요. 연보라와 연분홍 사이의 오묘한 빛깔 덕분인지,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홀로 봄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소매의 주름 디테일과 변형 패턴으로 볼륨감을 준 셔츠.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자주 손이 가죠. 그러나 이 분홍색 셔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실루엣 뿐만 아니라 ‘컬러’가 진가라고 합니다. 색감 때문에 입고 외출할 때마다 어디서 구매했는지 질문이 들어온다고 하네요. 이런 개성있는 컬러의 셔츠 낱장에 팬츠, 혹은 기다란 롱스커트를 매치해도 분명 멋스러울 겁니다. 사실 이 정도로 예쁜 셔츠 하나는 그 자체로 충분한 포인트니까요! 

출근길에서 만난 그 단정한 여성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현대판 패션 에디터가 출근길에 입을 것 같은 룩이에요. 커다란 숄더백에는 각종 트렌드 자료가 구겨진 채 얼굴을 내밀고 있을 테고, 바빠서 차마 손질 못한 머리카락은 헤어밴드로 깡그리 무심하게 넘겨진 모습. 

셔츠에 쇼츠라는, 어떻게 보면 세련된 프레피(preppy) 스타일인데요. 그러나 스타일리시함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긴 목에는 초록빛 비즈 넥크리스를, 이마 위에는 시크한 블랙 선글라스로 마무리했네요. 에디터인 제가 개인적으로 그대로 베껴 입고 싶은 스타일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