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속에 원하는 이상향이 명확하게 들어 있었고 취향 또한 분명한 편이므로 인테리어할 때 어려움은 없었다.  그저 내추럴한 무드의 인테리어로 맞추면 되었다. 나무, 흙, 가죽과 같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를 최대한 사용한 인테리어가 최종 지향점이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크지 않은 예산으로 무엇을 택할지, 그것이 문제였다. 그중엔 선반도 있었다. 집의 메인 공간에 놓일 선반은 우리 집의 인상을 좌우하기도, 내가 아침에 기상하여 거실로 나오면 가장 먼저 마주할 오브제이기도 하므로 매우 신중히 골라야만 했다. 당연히 소재는 우드 계열, 이건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캐비닛이 딸린 3단 선반으로 할지, 혹은 벽을 가득 메우는 2열 4단 선반으로 할지였다. 

어느 일요일 아침, 우드 가구 맛집이라고 불리는 장미맨숀 숍에 방문하여 약 한 시간 가량 고민했다. 선반이 우리 집에 있다면 어떨지 시뮬레이션도 대여섯 번은 돌린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가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 적당한 크기의 3단 선반이었다. 고목나무 특유의 고급스러운 색감도, 선반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꺾쇠의 형태도 좋았다. 매거진, 화병을 진열하면 분명 깔끔하게 예쁠 선반이었다. 곧 우리 집에 자리해 공간에 여백과 쉼을 줄 것을 상상하니 이것이다, 확신이 들었다.

프리랜서인 나는 일요일 오전이면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짧게 업무를 본다. 물론 포근한 침대, 트레이 위에 노트북을 올려둔 채. 처음엔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블랙앤화이트 체커보드 트레이를 사용했다. 내추럴 인테리어를 지향하지만, 이 정도 하나의 포인트는 용인될 거라는 생각에. ‘포인트 컬러’라는 명목으로 개성 강한 트레이를 들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이질감이 들더라고. 침실만 들어오면 공간에 붕 떠 보이고 시선에 중앙으로만 몰리는 것이, 얼마 안 가 이 트레이가 공간의 무드를 해치고 있다는 사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국 무난한 우디 트레이를 구매했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은,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이 과정을  ‘절제’라고 표현한다는 것. 내추럴 인테리어에서의 핵심이었다. 모든 오브제는 은은한 자연 컬러로 구현하고, 디자인이 과하거나 무늬가 특징적인 오브제 등은 자제한다. 컬러의 비율을 따지자면 바탕의 비중을 70%, 주요 컬러를 25%, 포인트 컬러를 5% 비율로 사용한다. 우리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시계가 톡톡 튀는 레드 색상이니, 트레이 쯤은 당연히 은은한 우드로 맞춰줘야 하는 것이다.

오후 간식으로 그릭 요거트를 만들어 먹는다. 우유와 마시는 요거트, 그리고 면포면 준비물 끝이다. 전기밥솥에서 발효된 덩어리를 면포에 감싸 손으로 꾹 짜 냉장고에 넣는다. 충분히 유청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면, 꾸덕하면서도 새콤한 그릭 요거트 완성이다.

면포를 감싼 채 늘 해 오던 대로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는데, 오늘따라 손과 달리 마음은 아까부터 멀리 가 있다. 최근에 새로 집에 들인 청색 그릇 때문이다. 자연의 질감을 담은 도자기 그릇. 새하얀 그릭 요거트와 달콤한 블루베리를 그 작은 공간에 예쁘게 플레이팅 할 생각에 심장에 맥박이 뛰듯 설렌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뭐. 이 그릇 때문이라도 몸에 건강한 그릭 요거트를 자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웃기기도 하면서 기분은 좋다. 

직접 만든 요거트, 직접 만든 옷, 직접 만든 비누. 이렇게 직접 만든 무언가를 소유하는 기쁨은 비할 데가 없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을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재능을 찾은 것 마냥 벅차오르는 감정이 함께 온다. 

그렇기에 ‘홈가드닝(Home Gardening)’이 내추럴 인테리어의 꽃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리는 집에서도 로메인, 바질, 케일, 적상추 등 직접 기른 깨끗한 채소를 얻을 수 있다. 무한한 미래를 가진 이들은, 기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싱싱한 샐러드, 고소한 바질 파스타, 간편한 샌드위치로 바뀌기도 한다. 무엇보다 친구들을 초대한 일요일 저녁 식사 자리. 미니 텃밭에서 갓 따낸 상추에 삼겹살 한 점 올려주면 이만한 즐거움이 없다. 톡, 이파리가 따이는 소리에 환호해 주는 친구, 이런 귀여운 취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며 반응해 주는 친구들을 보며 뿌듯함이 배가 된다. 무공해 먹거리로 자급자족하는 이야기, 영화에만 등장할 것 같지만 역시 도심 속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