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반짝거리는 것들을 모으는 게 취미였습니다. 아마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 하울의 방을 보고 영감을 받았을 거예요. 오르골 소리, 신비하게 빛나는 보석들, 고풍스럽고 엔틱한 가구들까지. 제방도 그렇게 화려하면 좋겠기에 어딜 방문하든 반짝거리는 물건들을 수집했습니다. 사촌 언니로부터 졸라서 받아낸 딱정벌레 브로치, 해변에서 주워온 말끔한 조약돌, 흔들면 딸랑, 소리 나는 구슬 구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반짝임들을 모았어요.

여러분의 취향에 부합하는 ‘이상적인 방’,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테죠. 여러 지역, 여러 공간을 방문하다 보면 ‘아 나 이런 거 정말 좋아했었는데’ 생각하게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까요. 자신에 대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특히 정갈하게 구성된 컨셉의 공간들을 오래 찬찬히 살펴보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끌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왜 마음에 드는지 고민해 보기도 하지요. 수집하고 정리하다 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기 마련이거든요. 아무튼, 오늘 EGOT은 합정입니다. 좋아하는 공간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수집 덕후들을 위하여. 정체성이 확고한 공간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합정동의 조용한 골목에는 감각적인 갤러리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힙한 음악과 함께 빈티지한 포스터들을 즐길 수 있어 볼거리가 많은 카페인데요.기하학적인 의자의 형태부터 벽에 걸린 유니크한 작품들까지, 여기가 쇼룸인지 카페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곳을 갤러리가 아닌 ‘커피’때문에 방문하는 이들도 많은데요. 시그니처 라떼, ‘WIS signature’때문. 시나몬과 카라멜이 블랜딩된 우유의 달달한 속에서, 진양조 원두만의 너티한 고소함과 과즙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무리로는 크런치의 바삭한 식감도 더해졌지요. 그러나 8월 중순까지 잠깐의 공백기를 가지고 ‘루나토 커피 에스프레소 & 브루잉 바’의 이름으로 돌아온다는 속보.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참고해 주시길.

소품샵은 어느 동네를 방문하든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이죠. 합정에서도 아주 사랑스러운 소품 숍을 찾아내었는데요. 바로 도시에서의 나긋함이라는 의미의 ‘어반리썸’입니다. 숨 가쁘게 살아온 우리에게 잔잔한 쉼을 드리는 라이프스타일 셀렉샵이 되고자 한다는데요. 일상과 쉼, 그 간극을 좁힐 수 있도록 언제나 닿는 곳에 있겠다는 귀여운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빌라들 사이 반지하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아담한 공간. 거기에 노란빛의 은은한 조명이 더해지니, 취향 확실한 디렉터의 세심한 손길로 꾸려진 소품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러블리한 그릇과 컵은 물론, 포스터와 액자 등 소품들은 고급스러운 빈티지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요. 어디선가 오르골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그런 인형의 집을 구성하기 제격입니다.

LP와 와인, 유럽풍 우드 인테리어의 조합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는 이곳, 컴피. 탁 트인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덕분에 특유의 복작복작한 시끄러움 없이 온전히 내 앞의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여기다 옛날 알앤비, 보사노바 같은 황홀한 음악들은 덤이죠.

2차로 컴피를 방문했던 에디터의 최애 매뉴는 통영 돌문화와 프레쉬한 야채로 만든 지중해식 문어 샐러드. 그 외에 부라타 토마토 샐러드, 허브파스타, 항정살 튀김, 부채살 스테이크 등 여러 선택지들이 많으니 가벼운 내추럴 와인이나 시그니처 메뉴인 컴피 하이볼과 즐겨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며칠 전 친구를 만났어요. 자기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밴드를 찾았다며 자랑을 하더라고요. 시원한 보컬, 폭발적인 드럼 그리고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기타와 베이스 사운드까지. ‘나를 쥐락펴락하는 영국 밴드다’라며 ‘Nothing But Thieves(나씽 벗 띠브스)’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2011년 무렵 결성된 ‘Nothing But Thieves(나씽 벗 띠브스)’는 조 브라운이 피자가게에서 배달 일을 했을 무렵, 함께 배달하던 키시라는 점원이 피자 토핑을 훔쳐먹었던 일화를 듣고 '도둑이나 다름없다'라 말한 것에서 그룹 명을 따왔다고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리는 곡, ‘I was just a kid’엔 중성적인 목소리, 육중하고 강렬한 기타 리프와 드라마틱한 흐름, 풍부하고 유려한 멜로디 라인에서 느껴지는 인디 록의 예민함과 팝의 서정성이 느껴집니다. 거기다 영국 밴드 특유의 격정적인 에너지와 퇴폐적인 관능미까지, 듣는 재미가 쏠쏠한 음악이죠.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들의 일주일을 위하여, 월요일 퇴근길에 흥겹게 즐겨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