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변화에 지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려면 명도를 높여야 합니다. 괜히 등잔 밑을 들쳐보고, 소리 없이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아 자세히 들여다보고, 계절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그렇게 꿈틀거리는 가을을 가만히 응시해 보는 거죠. 주변의 사소한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 속에 취향의 조각들이 숨어있었음을.

이른바, 가을이라는 계절.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향만으로는

결코 단정 불가한

얼룩덜룩 가을의 얼굴들.

가을이란 걷잡을 수 없이 바쁜 일상에서도 자신의 내면을 보살피며 농익어가는 계절입니다. 벼는 고개를 숙이고, 잎은 푸른 에너지를 하늘에 양보하며, 호박과 단감 같은 과일은 가장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지요. 모두들 철이 들었는지 자신을 가장 검소한 색으로 물들여갑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가을만 되면 항상 '브라운' 계통의 컬러가 끌리더라고요. 트렌치코트, 헤링본 재킷, 니트, 스니커즈, 모두 베이지나 브라운 혹은 오렌지로 선택하고는 합니다. 허리춤에 과감한 컷아웃 디테일이 있는, 이 맥시 드레스가 마음에 든 이유죠.

이 날씨가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이 준비된 이벤트처럼 보이고, 모든 풍경이 저를 위한 배려처럼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비슷한 일상을 사는 이에겐 불규칙적인 구름의 형태가 더욱이 소중해요.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아요. 

어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또 다른 모양으로 뭉치는 구름. 그 모습을 조금 잘라서 기억속에 고이 보관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끌린 것 같아요. 구름의 질감을 닮은 이 플러피 가디건에요.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 브랜드인 자크뮈스답게 색감도 예쁘고, 로고 장식의 잠금 디테일을 더하여 유니크하기까지. 제니와 이하이가 입었던 가디건이지만, 이건 뽀송한 폴리아미드라 개인적으로는 더욱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새로움을 갈망하며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좋은 계절입니다. 묵혀뒀던 여행에 대한 욕구를 지금 세상을 향해 쏟아낼 때죠. 누군가 제게 역마살 낀 것처럼 돌아다닌다고 웃을지언정, 좋은 날씨가 선사하는 즐거움을 포기하면 겨울이 왔을 때 후회할 거라는 사실까지 부인하긴 어려울 겁니다. 

지난 주말에는 커피와 타르트를 사들고 한강을 찾았습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긴 벤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금세 해가 지고 그늘이 드리워지더라고요. 맑고 빛나던 하늘은 어느새 투명하고 차가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우터를 챙기지 않았던 걸 후회했어요. 오한이 들 만큼 추웠으니까요. 일교차가 이렇게나 큰 가을에는 레이어드 스타일링이 필수입니다. 가능한, 있는 힘껏 겹쳐 입어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