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으로 나를 기록하다, 브랜드 RAF SIMONS

미리보기

2022. 2. 21.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FREVIEW

vol.52

RAF SIMONS

EDITOR'S LETTER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하나요? 사람, 물건, 취미, 혹은 특정 분위기가 될 수도 있겠죠. 여기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집대성하여 아카이브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하여 ‘라프 시몬스’, 패션계의 천재라고 불리는 디자이너예요.

“살아오며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담아내려고 한다”라고 전합니다. 매 컬렉션마다 뜨거운 이슈를 불러 일으키는 라프 시몬스의 일생은 그가 사랑한 음악과 영화 그리고 예술에 대한 가치를 넓혀가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선보이는 모든 작품들은 결국 라프 시몬스 개인이 가진 열정의 총 집합체이자 서로 상반되는 상징들이 창출해 내는 창조적인 시너지로 귀결되죠.

이번 콘텐츠에는 브랜드 ‘라프시몬스’의 최근 컬렉션을 비롯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라프시몬스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포스트 펑크와 뉴웨이브, 유스 컬처가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에게 어떠한 예술적 모티브를 주었는지 궁금하시다면 설렘을 가지고 봐주시길!

# 유스컬처를 기반으로 탄생하다

1995년에 탄생한 브랜드, ‘라프시몬스’. 유스 서브컬처에 영감을 받았어요. 디자이너 ‘라프시몬스’는 젊은 남성들이 옷을 입는 방식, 그리고 입고 싶어 하는 옷의 형태를 송두리째 바꾼 인물입니다. ‘남성성’이란 개념은 결코 한두 가지의 고정적이고 관습화된 이미지로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죠.

유스 컬처 특유의 자유분방함, 창의적이고 스포티한 분위기가 가장 큰 특징. 교복, 뉴웨이브 음악, 펑크 해체 등이 그의 디자인 정신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강렬하지만 조화로운 컬러블록을 잘 활용하면서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구축하여 매 컬렉션마다 열광적인 찬사를 얻어내고 있습니다.

# 영한 감성의 디자이너

지금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한 라프 시몬스, 그는 처음엔 패션의 ‘패’자도 모르는 평범한 벨기에 소년이었습니다. 오직 농장으로만 둘러싸인 시골 환경에서 그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재미는 동네 유일의 레코드 숍에서 밴드 음악과 전자 음악을 듣고 그 앨범 커버를 감상하는 일이었다고 해요.

18살이 되기 전까지, 그는 패션 디자인이나 예술을 공부할 수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예술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이를 패션에 접목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여 오랫동안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걸었다고 해요.

이미지: 마르지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라프시몬스

이런 라프 시몬스가 본격적인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저명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초, 디자이너 발터 비렌동크 밑에서 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마르지엘라의 쇼를 보게 된 것이지요. 마르지엘라의 신비스러운 아방가르드함은 그를 완전히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1990년도에 본 마르지엘라의 쇼는 내 패션의 시작’이라고 훗날 고백하기도 할 정도였죠.

이렇게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굳힌 시몬스는 벨기에의 유명 예술 학교인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의 교수, ‘린다 로파(Linda loppa)의 지도하에 199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라프시몬스’를 런칭하게 되죠. 그는 ‘마틴 마르지엘라’가 진실되게 추구해왔던 가치인 ‘젊음(유스)’과 ‘반항’을 핵심 정체성으로 삼아 컬렉션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 패션을 통해 자신을 기록하다

1995 FW 라프 시몬스, 그의 첫 번째 컬렉션은 런웨이가 아닌 비디오를 통해 진행되었는데요. 비디오는 두 명의 모델이 반복해서 워킹을 하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고 현재 평가받고 있는 대표적인 쇼입니다. 뉴웨이브와 펑크 뮤직에 영향을 받은 이 쇼는 미국 프레피룩과 영국 남학생의 스쿨룩을 연상케 하는데요.

20대의 스키니한 체형에 어울리는 핏한 학교 유니폼은 이후 남성이 옷을 입는 방식과 패션에서의 ‘남성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질적 질문을 던지는 기회가 됩니다. ‘유스’컬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던 그는 ‘젊은 이들이 실제로 무엇을 입고 생각할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직접 거리를 돌아다니며 인터뷰해서 모델을 채택했다고 해요.

“나는 단지 옷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나의 태도,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라프시몬스-

라프 시몬스의 영감은 ‘젊은이의 삶과 음악’으로 부터 옵니다. ‘젊음(youth)’와 ‘반항’을 기반으로 자유분방함이 담긴 ‘스트리트’ 스타일과 테일러링을 예술적으로 섞은 디자인을 추구해요. 그의 디자인에는 어릴 적 관심을 가졌던 펑크, 그런지 록, 뉴 웨이브 음악 등 예술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녹아져 있죠.

가령 그가 영감받은 음악에서 차용한 이미지와 단어를 디테일로 반영하는 식. A/W 97 컬렉션에서는 매싱 펌킨스(Smashing Pumkins)의 노래, ‘Tonight Tonight’을 런웨이 사운드 트랙으로 쓰기도 하고, F/W 98 컬렉션에서는 전자음악의 대부라 불리는 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실제 밴드 멤버를 모델로 세우기도 했어요.

현재 라프시몬스

유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라프시몬스' 레이블은 유스 서브 문화를 주제 삼고 계속해서 컬렉션을 꾸려가는데요. 그러나 라프시몬스가 질샌더, 디올 등에 몸담게 되면서 미니멀리즘에 영향을 받아 2006년 이후로는 현대적인 ‘실루엣’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때부터 라프시몬스의 무드는 정밀한 테일러링에 미니멀한 디자인, 거기에 팝적인 프린팅이 가미된 스타일로 축약할 수 있죠. 구조적으로 미니멀하지만, 조화로운 컬러 블록으로 ‘과감하고 영한 감성’을 풀어 내고 있습니다.

# 타 브랜드에서 라프시몬스를 원하는 이유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질 샌더(2005-2012), 디올(2012-2015), 캘빈 클라인(2016-2018), 프라다(2020-현재) 등의 빅 브랜드들에서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함께 일하며 커리어의 균형점을 맞추어 왔어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그가 지금껏 세상에 내놓았던, 주목할만한 몇 가지 컬렉션을 한 번 봐볼까 합니다. 라프시몬스는 자신의 고유한 패션 아이덴티티를 여러 브랜드를 거치면서 진화시켜 나갔죠. 그가 어떤 방식으로 디자인에 녹여냈는지 감을 잡아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Jil Sander

앞서 말씀드렸듯 라프시몬스는 2005년에 질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이 됩니다. 그리고 극도의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질샌더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우아하면서도 캐주얼하게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이죠.

‘선’과 ‘형태’, ‘비율’에 대해 변화를 모색하고, 선명한 원색을 과감하게 조합, 액세서리를 절제한 것이 특징. 스트리트와 하이패션의 조화를 통해 ‘미니멀리즘의 현대화’를 추구했다고 평가받죠. 특히나 그가 마지막으로 디렉팅했던 2012FW컬렉션은 미니멀 로맨티시즘의 절정을 보여준 아름다운 쇼로 아직도 회자됩니다.

2) Dior

라프시몬스가 2012년, 유서 깊은 프랑스의 패션 하우스 디올의 ‘오트 쿠튀르’ 디자인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심적으로 매우 고통받았다고 하는데요. 그의 재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 갔다는 외부의 비판과 로맨틱한 하우스 브랜드를 모던화해달라는 숙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라프시몬스는 모더니티를 강조했던 크리스티앙 디올의 초기 작품(뉴룩 실루엣과 꽃)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우아한 여성성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성공합니다. 장미, 라일락, 참제비 고깔 꽃 등 생화로 쇼장을 가득 채우는 등 설치 미술을 활용하기도 하죠. 우아한 실루엣에 스포티함을 더하고, 다양한 색채와 그래픽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적용하는 그의 시도는 디올이 화려한 장식적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모던한 동시에 캐주얼한 감성의 쿠튀르’라는 새로운 감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3) Calvin Klein

캘빈 클라인의 CCO(Chief Communication Officer; 최고 홍보 책임자)로 임명된 라프시몬스는 캘빈클라인의 여성복, 남성복, 언더웨어, 향수, 뿐만 아니라 마케팅과 홍보까지 경영 전반에 대한 업무를 떠맡게 됩니다. 유스 컬처나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동경, 아웃사이더적인 경향을 확장시켜 본래의 감성과 융합시킨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하죠. 미국 브랜드 특유의 실용주의 감성에 라프 시몬스만의 감각을 덧댄 젊은 디자인.

라프 시몬스로 인해서 점차 개성을 찾아가는 캘빈 클라인을 보고 패션 평론가들은 ‘Calvin Klein is renewed(캘빈클라인이 리뉴얼됐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왜일까요. 뜨거운 박수를 받았지만 ‘매출 부진’이라는 이유로 3년 만기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이에 대해 말을 아끼던 시몬스는 훗날 2019년 패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하죠. “요즘엔 컬렉션이 아무리 별로여도 비즈니스가 잘 돌아가면 박수를 친다.”

4) Prada

지난 2021년, 라프시몬스와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프라다 첫 컬렉션을 선보였죠. 수많은 패션 평론가들이 ‘이전의 프라다보다 한결 더 젊고 더 현대적으로 느껴진다’고 평가했는데요.

프라다의 ‘우아’한 미와 라프시몬스의 ‘영(young)’하고 스포티한 무드가 공존하는 컬렉션이었습니다. 조금 더 강조된 실용성, 우아하게 과장된 로고, 그리고 컷 아웃 디테일 등. 라프시몬스와 꼭 닮은 오버핏 실루엣에 프라다의 고급스러운 로고가 더해지니 그야말로 ‘젊고 신선한 프라다’의 탄생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상반되는 두 디렉터의 감성이 융합된 모습이 앞으로 정말 기대됩니다.

#2022 SS Ready To Wear

지난 5년 동안 ‘젠더리스’라는 키워드는 패션계에 만연하게 등장했죠. 런웨이나 레드카펫, 심지어 잡지 표지에서 드레스를 입은 남성들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 라프시몬스의 컬렉션에서도 정장 치마 차림의 남녀 모델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옷들을 ‘우리 사무실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가’의 문제겠죠. 라프시몬스의 이번 컬렉션은 젠더리스가 월스트리트나 런던 시티의 사무실과 같은 현실세계에서도 펼쳐질 수 있으며, 생각보다 우리 일상과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쇼였습니다.

비즈니스 복장 규정이 가까운 장래에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한 22SS 컬렉션. 디자이너 라프시몬스는 <보그 런웨이>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컬렉션에 대하여 “그 누구도 갓 태어난 아이의 성별을 구분하여 옷을 입히지 않는다. 그저 아기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이며, “성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실루엣을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치마와 드레스를 입은 남성 모델들이 줄기차게 등장했어요. 스트라이프 버튼 다운 셔츠, 블레이저, 중성적인 컬러의 A라인 드레스, 세미 플리츠 스커트, 오버 코트 니트 등 비즈니스 의류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템으로 구성됐죠. 라프 시몬스 특유의 그래픽과 오버사이즈 실루엣에 밝은 톤의 컬러웨이가 더해진 것은 덤. 라프시몬스는 그의 컬렉션에 대하여 ‘매우 순수하고 시대를 초월한 실루엣’이라고 평하면서 ‘남자에게는 유니폼, 여자아이에게는 쿠튀르에 가까운 것 같다’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상의는 박시하고 루즈하게, 그리고 가위로 싹뚝 자른듯 대부분 무릎위까지 커팅 되어있는 쇼츠나 스커트까지. 라프시몬스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잘 묻어나 있는 이번 쇼에서 하한슬 아티스트가 픽한 5가지 착장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올블랙 룩에 버건디 컬러의 케이프캡이 눈에 띄는 룩입니다. 대디핏 블레이져 안에 이너를 입히지 않고 과감하게 연출한 게 포인트죠. 블레이저에 부착된 브로치들이 펑크한 느낌도 줍니다. 전반적으로 올블랙이지만, 시크한 미 위에 악세사리로 변주를 준 깔끔한 스토리.

이번 시즌 시그니처 그래픽이 한눈에 보이실 겁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스타일링이지만, 팬츠 스커트로 유니크함을 더하고 와이드한 벨트고리를 매치한 디테일이 재밌어요. 슈즈는 볼드한 레이스업 부츠로 시크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모델의 팔뚝을 강하게 쥐고 있는 유령의 팔. 미리 정해진 성별 규범을 고수하려는 유령의 압박처럼 느껴집니다. 라프시몬스는 이 스타일링에 대해 ‘마틴 로즈가 타비 부츠를 신는 것’과 같은 브랜드 상징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체리컬러의 스트라이프 셔츠와 옐로우 컬러의 캡이 시선 강탈. 이와 함께 이번 시즌 핫 디테일인 스컬핸드 뱅글이 눈에 띈다. 대디핏 셔츠에 플레어스커트는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네요. 과장됐지만 또한 시크합니다.

아름다운 미감과 섬세한 테일러링이 집약된 대디핏 화이트 셔츠.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는 이 셔츠는 와이드한 커프스가 포인트입니다. 아래로 살짝 삐져나온 그래픽 스커트가 전반적인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시크한 블랙과 화이트의 극적인 대비는 그저 예술입니다.

라프시몬스는 지금 젠더리스를 탐닉하는 중! 대디핏 싱글 코트에 들어간 알록달록한 그래픽 디테일이 매력적입니다. 이 코트를 포인트 삼기 위해 이너는 과감히 생략해서 섹시한 느낌도. 벨트 버틀을 사이드로 위치시킨 것도 볼만한 재미요소입니다.

# 그저 세상에 내 이야기를 전했을 뿐

라프시몬스는 패션과 관련된 모슨 것을 독학했습니다. 그에게 ‘패션’이란, 자신의 취향과 사고방식을 풀어내는 그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그래서 스스로를 패션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위해 옷이나 영화를 만들거나, 예술 작품에 몰두할 뿐이죠.

오직 열정을 향해 선로를 끊임없이 옮겨가는 라프시몬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패션계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는 인물로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어지는 바입니다.